누구도 울지 않는 밤

누구도 울지 않는 밤

김이설 지음 | 문학과지성사 | 392쪽 | 1만6000원

“그래도 나는 다음 계절을 기다리기로 했다.”

기다린다니. 복수하진 못하더라도 불행을 빌어줘야 하는 것 아닌가. 단편 ‘환기의 계절’ 속 ‘나’의 남편은 이혼을 요구한다. 바람을 피웠고, 아이가 생겼단다. 이혼해주지 않으면 그 아이를 부부의 호적에 넣는다고 협박한다. 그럼에도 화자는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은 기다림이라고 말한다. 복수극에 길들여진 요즘 한국 사람들은 답답할 수도 있겠다.

누가 가족을 쉽게 끊어낼 수 있을까. ‘나’의 어머니도 비슷한 경험을 한다. 집 나간 아버지가 27년 만에 돌아온다. 수많은 약을 달고 늙은 채로. 아버지는 등 떠밀려 결혼했지만, 사실 한 청년을 좋아했다. 이를 알고 어머니가 아버지를 내쫓은 것. 딸들은 돌아온 아버지를 반대하나, 어머니는 의견을 굽히지 않는다. 무작정 아버지를 기다려온 줄 알았던 어머니는 사실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어머니의 기다림이 결혼 생활을 붙잡기 위한 최선의 노력이었듯, ‘나’의 기다림도 마찬가지일 터다.

책 제목과 달리, 열 개의 단편 중에서 ‘누구도 울지 않는 밤’은 없다. 각 작품은 쉽게 위로하기 어려운 비극적인 풍경을 그리고 있다. 작가는 울지 않는 밤은 쉽게 오지 않는다고 말하려는 건 아닐까. 기다림이야말로 슬픈 현실을 마주한 다음에야 가능한 것이라고 말이다. 단편 ‘내일의 징후’ 속 ‘소혜’도 마찬가지. 작품은 소혜와 연인인 ‘성은’이 헤어지는 과정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그러나 작품을 읽으면 성은에게 전화 한번 걸지 못하는 소혜에게 마음이 가게 될지도 모른다. 소극적으로 보이나 적극적인 인물들의 모습에서 슬픈 밤을 견디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