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아람 Books 팀장

“대부분의 베스트셀러는 기꺼이 수동적인 소비자가 되려는 독자를 염두에 두고 쓴 작품입니다. 표지의 선전 문구는 그 책이 지닌 위압적이고 공격적인 힘을 강조할 때가 많습니다. 책장을 넘기는 걸 멈출 수 없다, 가슴이 덜컹한다, 머릿속을 태운다, 심장이 멈출 것 같다… 이게 뭐죠? 전기 충격 고문입니까?”

어슐러 K. 르 귄(1929~2018)의 산문집 ‘마음에 이는 물결’에서 읽었습니다. 르 귄은 ‘SF 판타지의 여왕’으로 불리는 미국 작가. 대표작 ‘어스시 연대기(Earthsea Cycle)’로 세계적인 팬층을 확보하고 있지요.

‘첫 번째 문단으로 독자를 사로잡아라’ ‘충격적인 장면으로 독자를 강타하라’ ‘독자에게 숨 쉴 시간을 주면 안 된다’…. 글쓰기 책에 으레 나오는 베스트셀러 작법이지만 르 귄은 이를 “무서운 개를 풀어놓는 것 같다”며 비판합니다.

르 귄은 “독자를 무력한 희생자나 수동적 소비자가 아니라 적극적이고 똑똑해서 협업할 가치가 있는 상대로 보는 작가들은 언어 공격과 포격 없이도 독자의 주의를 끄는 것이 가능하다 믿는다”고 말합니다. “상대를 억지로 범하지 않고 함께 춤을 추는 겁니다. 이야기를 춤으로, 독자와 작가를 함께 춤추는 파트너로 생각해 보세요. 작가가 춤을 이끄는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이끄는 것과 밀어붙이는 것은 다릅니다.”

글쓰기도 의사소통이라는 것을 많은 이가 간과하지만, 누군가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길 바란다면 상대를 대등한 존재로 여기는 게 우선이겠죠. 르 귄은 말합니다. “작가에게 얻어맞고 전기 충격을 받은 경험밖에 없는 독자라면 조금 연습이 필요할지 모르지만, 일단 춤 추기를 시도해 본 뒤에는 ‘무서운 개들’ 사이로 결코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곽아람 Books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