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의 장례

K의 장례

천희란 지음 | 현대문학 | 132쪽 | 1만3000원

이름만큼 우리의 삶을 규정짓는 요소는 드물다. 때로는 족쇄가 되기도 한다. 이름을 바꾸더라도 종전 삶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본래 이름은 가슴 한편에 남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표제작의 여성 소설가 ‘손승미’의 본명은 강재인. 유명 소설가 K의 딸이다. 필명을 정하며 물려받은 성을 버렸으나, K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할 수 있는 일은 그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는 것뿐이다. 그런데 15년 전 죽은 K의 글을 연구실 앞에서 발견한다. CCTV를 보니 다른 여성 소설가 ‘전희정’이 놔둔 것이다.

희정의 이름은 빈껍데기와 같다. 데뷔 5년 차에 책 한 권이 인기를 끌어 스타덤에 올랐다. 사교 자리에선 금세 자취를 감춘다. 혹자는 ‘건방지다’고 말하나, 사정이 있다. 그는 K가 쓰는 소설을 자기 이름으로 출간하되 인세를 받는 거래를 맺었다. K가 죽은 지 15년 지나 그의 컴퓨터에서 한 파일을 발견한다. 아내와 딸에 대한 속마음, 희정과 하기로 한 거래와 관련된 글. 재인은 이 글을 통해 아버지에 대해 글을 쓴다. 희정 역시 필리핀으로 건너가 ‘영주’라는 이름으로 살아간다.

책은 K의 죽음을 소재로 하나, 실은 ‘재인’과 ‘희정’이 각자의 이름을 떠나보내는 장례식에 가깝다. 인물들은 이름이란 족쇄가 앗아간 자유를 되찾고자 씨름한다. 그 족쇄를 응시하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할 때 비로소 자유를 찾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누구에게나 떠나보내고 싶은 자기 모습이 있을 것이다. 작가가 “장례가 현존하는 죽음의 자리를 마련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책에 썼듯, 자신의 ‘장례’를 어떻게 치를지 고민해야 할 때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