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로 나가 지구를 돌아본다면
올리버 제퍼스 지음·그림 | 김선희 옮김 | 주니어김영사 | 64쪽 | 1만5000원
아빠와 두 아이가 함께 집을 나선다. 막 도시를 벗어나는데 뒷좌석 아이들이 다툰다. “내 자리야!” “아니, 내 거야!”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빠가 웃으며 말한다. “이제 잠시 멀리 돌아가서 우리 자신을 좀 볼까?”
차가 달을 향해 날아오른다. 돌아보니 지구는 차로 가는데 걸린 시간 만큼 시간을 거슬러 옛 모습을 보여 준다.
차가 시속 60㎞로 날아 도착한 금성까지는 78년이 걸린다. 지구는 총과 포로 서로를 겨눈 세계 대전의 소용돌이 속이었다. 수성까지는 150년, “몇몇 작은 나라가 좋은 땅과 사람들을 나눠 가지려 경쟁하던” 제국주의 시대였다.
283년이 걸려 태양에 도착한 뒤 돌아보니 18세기 중반의 아메리카 대륙에선 미국 독립전쟁이 한창. 1200년이 지나 도착한 목성에선 주변국 정복을 끝내고 또 싸울 상대를 찾아 바다를 저어 나가는 바이킹의 배가 보인다.
‘우리가 사는 지구는 우리를 둘러싼 거대한 우주의 암흑 속에 있는 외로운 하나의 점’이라고 위대한 과학의 선지자 칼 세이건은 말했다. 1990년 우주탐사선 보이저 1호가 61억㎞ 밖 우주에서 카메라를 돌려 사진 한 장을 찍었을 때, 사진 속 지구는 작고 창백한 푸른 점이었다. 그 작은 점 위에서 수많은 영웅과 제국, 사상과 체제, 성자와 죄인이 찰나의 영광을 소유하려 온 힘을 다해 서로 빼앗고 다투다 일어나고 사라졌다.
이 책은 세이건이 창백한 푸른 점으로 찍힌 지구 사진 한 장을 통해 인류에게 선물했던 깨달음을 그림 언어로 바꿔 사근사근히 들려주는 듯 하다. 우주는 이렇게 늘 드넓었고, 매일 재난과 파괴와 드잡이로 바람 잘 날 없는 지구는 늘 이렇게 작은 별이었다.
2500년이 걸린 토성에서는 만리장성 쌓는 모습이, 5000년 이상 운전해 간 천왕성에선 쇠를 다뤄 만든 강철 무기와 전차로 벌이는 정복 전쟁이 보인다. 8000년 걸린 해왕성을 지나, 1만1000년 만에 도착한 명왕성에서 지구를 보니, 사람들은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너무 바빠 굳이 서로 싸우지 않았다. 그제야 아이들이 잠들고, 아빠는 지구를 향해 유턴한다. 그리운 집도 저 아름답고 창백한 푸른 점 위에 있다.
책의 마지막, “당신이 어디를 가든, 언제나 집에 가는 게 가장 좋다”는 인류 최초 달착륙 유인 우주선 아폴로 11호 선장 닐 암스트롱의 말을 만난다. 잘게 나누고 빼앗는데 몰두하기엔 이 아름답고 창백한 푸른 점은 너무 작고, 사람의 인생은 너무 짧다. 지구를 지키고 가꾸기 위해 무엇부터 해야 할 지, 책을 다 읽은 아이들의 생각을 들어봐도 좋겠다.
벨벳 코팅한 표지의 부드러운 촉감과 고급스러운 질감이 눈에 띄고, 추가 바니싱(일종의 광택 코팅) 작업을 한 본문 종이 위의 그림 색감도 더 곱게 느껴진다. 책을 만지고 종이 책장을 넘기는 일이 즐겁고 만족스러운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