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 창가에 놓아둔 벵갈고무나무 화분에서 ‘침입자’를 발견했습니다. 연두색 잎이 뾰족하게 솟아나 발돋움하고 있더군요. 잎은 하트 모양으로 펼쳐지더니 흰 바탕에 선명한 녹색 잎맥과 테두리를 그리며 아름답게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구글 렌즈로 찍어보았더니 ‘싱고니움’이라는 관엽식물이었습니다.

3월의 첫날, 봄볕이 따스하길래 자그마한 화분에 싱고니움을 옮겨 심어주었습니다. 꽃집 사장님이 “흙 속에 씨앗이 숨어 있었나봐요” 하더군요. 웅크리고 있던 씨앗이 실내에서도 봄이 오는 기척을 감지하고 움을 틔웠다는 사실이 신비롭게 느껴집니다.

“매년 지구의 땅 위에 떨어진 수백만개의 씨앗 중 5%도 안 되는 숫자만이 싹을 틔운다. 그중에서 또 5%만이 1년을 버틴다.” 호프 자런의 에세이 ‘랩 걸’(알마)의 한 구절입니다. 저자는 식물의 성장을 연구하는 과학자. 조울증을 앓는 자신의 이야기를 식물의 삶과 교차시켜 이야기합니다. “씨앗은 어떻게 기다려야 하는지 안다. 대부분의 씨앗은 자라기 시작하기 전 적어도 1년은 기다린다. 체리 씨앗은 아무 문제 없이 100년을 기다리기도 한다. 각각의 씨앗이 정확히 무엇을 기다리는지는 그 씨앗만이 안다. 씨앗이 성장할 유일무이한 기회, 그 기회를 타고 깊은 물속으로 뛰어들듯 싹을 틔우려면 그 씨앗이 기다리고 있던 온도와 수분, 빛의 적절한 조합과 다른 많은 조건이 맞아떨어졌다는 신호가 있어야 한다.”

싹을 틔운다는 건 얼마나 경이로운 일인가, 생각하며 싱고니움의 꽃말을 찾아보았습니다. ‘환희’. 봄이 왔다는 기쁨을 만끽하며 ‘랩 걸’의 또 다른 구절을 읽어봅니다. “모든 시작은 기다림의 끝이다. 우리는 모두 단 한 번의 기회를 만난다. 우리는 모두 한 사람 한 사람 불가능하면서도 필연적인 존재들이다. 모든 우거진 나무의 시작은 기다림을 포기하지 않은 씨앗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