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비와 쇠고기

강명관 지음|푸른역사|704쪽|3만9000원


700쪽이 넘는 이 책을 펼치기가 부담스럽다면 먼저 ‘춘향가’에서 암행어사가 된 이몽룡이 변 사또를 향해 읊은 시의 한 구절을 되짚어 보는 것이 좋겠다.

“금술잔의 아름다운 술은 만백성의 피요(金樽美酒千人血, 금준미주천인혈), 옥쟁반의 기름진 안주는 만백성의 기름이라(玉盤佳肴萬姓膏, 옥반가효만성고)”.

이 시에서 ‘가효(佳肴)’, 즉 ‘고기 안주’가 뜻하는 바를 새겨본다면, 강명관 전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의 이 노작(勞作)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책의 배경은 소의 도축과 쇠고기 판매, 쇠고기를 먹는 것까지 불법이었던 조선 후기. 생계를 위해 편법으로 소를 잡아 팔던 성균관 공노비들이 임병양란(壬丙兩亂) 이후 재정이 파탄 난 국가에 의해 수탈당하고, 한편으로는 저항한 역사를 그려낸다.

조선이 소의 도축과 식용을 금지한 것은 농업 국가라 소를 농업 생산을 위한 축력(畜力)으로 여겼기 때문. 세종 6년인 1424년에는 소와 말을 매매해 도축한 경우에는 장(杖) 100대에 처하고 가산을 몰수했다. 쇠고기를 먹은 사람의 처벌이 태(笞) 50대를 치는 데 그치는 것이 가볍다는 형조의 지적도 있었다. 그러나 도축은 근절되지 않았다. 지배층부터 쇠고기를 즐겼다. 쇠고기를 좋아해 날것을 씹기까지 한 연산군이 대표적인 예. 그는 소의 도축에 대한 금령을 풀었고, 그의 통치 기간에는 모든 연회에서 쇠고기가 사용되었다.

'저절로 죽은 소’가 아닌 도축한 쇠고기를 먹는 것은 조선시대에 불법이었다. 국가는 성균관 공노비 반인들의 소 도축 및 쇠고기 판매를 눈감아주고 그 대가로 영업세를 받았다. /게티이미지코리아

연산군을 몰아내고 즉위한 중종은 즉각 쇠고기 식용을 금지하지만 이후 정조 시기, 법은 사문화되고 서울의 쇠고기 소비량은 급격히 늘어난다. 영조 통치기의 금주령이 풀리자 술집이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안주를 만들기 위한 쇠고기 수요도 급증했기 때문이다. “서울과 지방을 가릴 것 없이 소 값이 지극히 싼 것을 이롭게 여겨 곳곳에서 도축이 낭자하고, 쇠고기를 길거리에 채소처럼 걸어놓고 파는 ‘쇠고기의 시대’가 도래했던 것이다.” 18세기 후반 조선에서 한 해간 도축되는 소의 수는 38~39만마리. 당시 조선의 인구가 2000만명가량이었으니 매년 50인당 1마리꼴. 작고 가난한 나라 조선에서 쇠고기만큼은 적지 않게 공급되고 있었던 것이다.

조선 후기 소를 도축하고 판매하는 주체는 서울과 지방이 달랐다. 지방에서는 백정이 담당했지만 서울에서는 반인(泮人)이 담당했다. 반인이란 현재의 성균관 대학 인근 마을 반촌(泮村)에 거주하는 성균관의 공노비를 일렀다. 고려시대 성리학자 안향이 성균관에 바친 노비 100명이 반인의 기원이라 알려져 있다. 17세기 후반 반인의 수는 2000명 정도로 추정되는데 이들은 200명 정원인 성균관 유생 및 관료진, 교수진을 위해 음식을 조달하고 식사를 준비하며 건물을 보수하고 번을 서는 등 각종 노역을 담당했다.

반인은 도성에 살고 있어 농사를 지을 수도 없었고 길쌈도, 행상도 할 수 없었다. 성균관은 반인에게 최소한의 생계수단을 마련해 줄 의무가 있었다. 원래는 성균관이 소유한 토지나 어장 등에서 나오는 수입을 거두는 과정에서 반인들이 일부를 차지하는 걸 묵인해 주었지만 17세기에 이런 관행이 사라졌다. 이에 국가는 반인에게 ‘현방(懸房)’이라는 곳을 차려 소를 도축해 쇠고기를 판매하는 걸 허가해주고 그 대가로 영업세인 속전(贖錢)을 형조·사헌부·한성부 등 삼법사(三法司)에 내도록 했다.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으로 쇠고기의 유통을 허가해준 것이다.

양란 이후 혼란을 틈타 노비들이 도망가는 일이 잦았다. 성균관이 솔거노비인 ‘반인’ 외에 재정 확보를 위해 지방에 두고 있었던 외방(外方)노비도 예외는 아니었다. 외방노비가 포목 등으로 납부하던 신공(身貢)이 줄어들자 성균관은 자금난에 시달렸다. 1730년대 즈음엔 국가에서 주는 비용으로는 유생들에게 식사조차 제공하지 못할 정도였다. 성균관은 비용을 반인들에게 전가했다. 반인들에게 거두던 속전의 양을 늘렸고, 결국 자살하는 노비가 속출하기 시작했다. 조선 사족체제의 최고 교육기관은 반인들의 노동과 그들이 팔았던 쇠고기의 값으로 근근이 유지됐다.

무능한 지배층과 수탈당하는 백성이라는 뻔하디 뻔한 소재를 ‘쇠고기’라는 먹음직스러운 키워드로 맛깔나게 이끄는 책. 만만히 당하지만 않고 수시로 파업을 감행해 서울시민들이 제사상에 쇠고기 아닌 돼지고기를 올리도록 했다는 반인들의 ‘투쟁’, 법도 막을 수 없는 인간의 욕망이 부동산 소유욕 뿐 아니라 식욕(食慾)까지 포괄한다는 사실도 의미심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