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책을 책장에 도로 두고 대신 다이어트 특집이 실린 잡지 앙앙을 사서 돌아가기 위해 잡지 매대로 갈 참이었다. ‘그 책 안 사시나요?’ 모르는 여자가 갑자기 말을 걸었다. ‘네?… 아, 그게….’ 갑작스러운 일이라 뭐라고 말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사면 좋을 텐데.’ 그 사람은 약간 화가 난 듯한 말투로 다시 말했다.”

나카야마 가호 장편소설 ‘흰 장미의 심연까지’(은행나무)의 한 장면. 주인공 도쿠코는 퇴근길 들른 서점에서 소설 한 권을 들춰봅니다. ‘다음에 사야지’, 돌아서는데 젊은 여자가 나타나 책을 사라고 권하지요. 얼떨결에 책을 산 도쿠코, 귀가하려는데 비가 쏟아집니다. 우산을 씌워주는 아까의 그 여자. 알고 보니 그 소설을 쓴 작가 루이였고, 둘은 순식간에 서로에게 빠져들어 파멸에 가까운 사랑을 시작합니다.

이 책은 2001년 뛰어난 이야기꾼에게 주는 야마모토 슈고로상을 받았습니다. 동성애라는 당시로선 파격적인 소재 때문인지 국내에는 최근에야 소개되었어요. 도쿠코가 서점서 루이를 만나는 장면을 읽으며 교보문고에서 진행 중인 ‘몰래 온 작가’라는 이벤트가 떠올랐습니다. 작가들이 서점서 자기 책을 살펴보고 있는 독자에게 다가가 말을 걸고 책에 사인을 해 선물하는 행사인데 소설가 최은영, 박상영, 이슬아 등이 참여했습니다.

작가와의 만남은 보통 강연회 등을 통해 이루어지는데, 그 경험에 즉흥성을 부여하고 싶었다고 교보문고 측은 밝혔습니다. 종종 작가들로부터 누가 자기 책을 사는지 궁금해 매대 근처를 서성인다는 고백을 듣습니다. 서점에 들른 날엔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 놓인 매대를 살펴보세요. 어느 날 작가가 불쑥 다가와 말을 걸지도 모르니까요. 사랑에 빠질 확률은 희박하겠지만, 그 만남만으로도 소설의 한 장면 같지 않은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