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거대 위협
누리엘 루비니 지음|박슬라 옮김|한국경제신문|452쪽|2만5000원
“‘거대 스태그플레이션 부채 위기’가 온다. 향후 10년 안에 발생할 스태그플레이션은 1970년대보다 훨씬 심각한 경제적 혼란과 피해를 가져올 수 있다.”
2008년 미국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와 글로벌 금융 위기를 경고했던 ‘닥터 둠(Dr. Doom)’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스턴경영대학원 명예교수가 진단한 새 파멸(Doom) 시나리오다.
글로벌 금융 위기를 분석한 ‘위기 경제학’ 이후 그가 13년 만에 내놓은 이 책(2022년 미국 출간)은 그의 별명에 걸맞은 루비니 버전의 종말론에 가깝다. 그는 초거대 위협(megathreat)으로 실패한 금융·통화정책, 세계적인 고령화, 중국의 부상과 미국의 후퇴, 인공지능, 기후위기 등을 망라한다. 이를 관통하는 본질적인 문제는 정부와 중앙은행 그리고 개인의 ‘빚잔치’다. 그동안 선진 경제는 수습하기 어려울 정도로 빚잔치를 벌였고, 초거대 위협이 다가오면 그 빚잔치에 대한 청구서를 내야만 한다는 것이다.
1970년대 유가 상승으로 인한 ‘오일쇼크’는 ‘스태그플레이션’이란 개념을 만들었다. 물가 상승과 높은 실업률이 공존하는, 기존 경제 이론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이었다. 루비니는 앞으로 10~20년 안에 기존 스태그플레이션보다 더 다루기 어려운 ‘거대 스태그플레이션 부채 위기’에 직면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무엇이 다른가. 먼저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 당시 각국은 심각한 물가상승을 겪었지만, 부채는 지금처럼 심각하지 않았다. 금리를 올려서 인플레이션에 대응할 수 있었다. 미국은 결국 1980년 초 기준금리를 20%로 올렸다. 심각한 경제침체를 겪었지만 스태그플레이션은 잡았다.
이제는 금리 인상이 쉽지 않다. 천문학적인 부채가 각국을 짓누르기 때문이다. 루비니는 “지난 40년 동안 거품 붕괴가 유발한 모든 충격에 같은 방식으로 대응해왔다. 더 쉽게 빌릴 수 있는 돈을 창조했다”고 진단한다. 그에 따르면 1999년에는 GDP의 2.2배였던 세계 부채 비율이 2019년에는 3.2배로 증가했다. 선진경제는 2019년에 이미 부채가 GDP의 4.2배였고 코로나 팬데믹 이후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각국마다 국민 호주머니에 꽂아준 코로나 특별 지원금은 본질적으로는 빚이었다. ‘제로 금리’라며 쉽게 돈을 뿌렸다. 이제 급격한 금리 인상은 기업과 노동자와 정부를 부채 상환의 늪에 빠뜨릴 것이다. 많은 기업은 파산 위기에 놓일 전망이다. 저금리와 부동산 호황이 맞물린 틈을 타 부채를 끌어다 쓴 ‘영끌족’은 영혼이 털릴 수밖에 없다.
이런 ‘명시적 부채’도 심각한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암묵적 부채’에 있다. 급격한 고령화로 인한 연금 체계 붕괴가 대표적이다. 연금개혁이나 정년 연장 같은 해결책이 필요하지만 세계 어느 정치인도 이런 문제를 건드리고 싶어하지 않는다. 결국 ‘빚내서 연금 줄게’라는 또 다른 부채로 해결할 공산이 크다. 기후 변화, 인공지능으로 인한 일자리 감소 문제도 암묵적 부채를 키우는 난제다.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은 에너지(석유)라는 단일 분야가 일으킨 공급 충격(재화나 서비스의 가격이 갑자기 변화하는 것)에서 촉발됐다. 앞으로 올 스태그플레이션은 최소 11개 공급충격이 합종연횡하며 벌어지는 고차함수가 될 것이라고 루비니는 우려한다. 고령화, 보호무역, 이민 둔화, 미·중 갈등, 기후 위기, 팬데믹, 부의 불평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해결책을 내놓기 더 어려워진다. “이런 다양한 분야에서의 공급 충격은 경제성장률을 떨어뜨리고 생산 비용을 늘려 인플레이션을 초래한다. 그리고 지금 부채 수준을 고려하면 1970년대가 단순한 준비운동으로 보일 정도로 거대한 스태그플레이션을 불러올지 모른다.”
대응이 어렵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경제 엔진을 꺼뜨릴 각오를 하고 빚잔치를 멈출 정부가 있을까. 게다가 기후위기와 고령화는 알면서도 눈감으려는 문제다. 이런 퍼펙트 스톰의 한가운데에서 정치권은 득실을 따지느라 바쁘다. 영화 ‘돈 룩 업’의 현실판이다. 루비니 역시 언급한다. “의사결정권자들이 논쟁하고 지켜보고 망설이는 사이에 초거대 위협은 점점 더 가까워진다. 그런 점에서 돈 룩 업은 굉장히 적절하다.”
자칭 ‘닥터 리얼리스트’인 타칭 ‘닥터 둠’의 맺음말이다. “망설이는 것은 곧 포기하는 것이다. 스누즈(몇 분 뒤 다시 알림) 버튼은 재앙을 불러올 뿐이다.” 출구 전략도 없이 빚을 내 번영으로 가는 길을 빌렸던 인류의 목에는 시한폭탄이 달렸다는 것이다. 원제 Megathrea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