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제이 사프콥스키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넷플릭스 드라마 '위쳐'의 한 장면. 주인공 게롤트는 괴물 사냥꾼이다./넷플릭스

경제학을 전공하고 무역회사에서 세일즈 일을 하던 이 폴란드 사내는 해외 출장 때마다 SF·판타지 소설을 잔뜩 사 왔다. 짬이 날 때마다 그 책들을 번역했다. 38세 때인 1986년 한 SF 잡지 공모전에 단편 ‘위쳐(Witcher)’를 내 3등상을 받았다. 이 소설이 대중과 평단의 호평을 끌어모으며 베스트셀러가 됐다. 가상의 왕국을 배경으로 괴물 사냥꾼의 모험을 그린 이 이야기는 이후 6권의 장편 시리즈로 확장됐고, 지금까지 전 세계 37개 언어로 번역돼 총 1500만부 이상 팔렸다. 동명의 넷플릭스 드라마는 2019년 공개 한 달 만에 시청 가구수 7600만을 돌파, 당시 세계기록을 경신하며 화제가 됐다. ‘폴란드의 톨킨’으로 불리는 판타지 소설가 안제이 사프콥스키(75·Sapkowski)의 이야기다.

지난 1일 2023 타이베이 도서전 폴란드 전시관 '위쳐' 특별 코너에 선 안제이 사프콥스키. /타이베이=곽아람 기자

‘위쳐’라는 단어는 사전에 없다. 지난 1일 타이베이국제도서전 폴란드 전시관에서 기자와 만난 사프콥스키는 “’마녀(witch)’의 남성형이라는 의미로 내가 만들어낸 단어다. 괴물을 사냥할 수 있는 신비한 힘을 가진 남자를 뜻한다”고 했다. 작품의 주인공 ‘게롤트’가 바로 그 ‘위쳐’. 그는 괴물로 변한 공주의 주술을 풀고, 마법에 걸려 야수가 된 귀족을 본모습으로 돌려놓는다. 사프콥스키는 “괴물이 된 공주가 나오는 폴란드 전설이 있다. 전설 속에서는 구두장이가 공주를 구하지만, 나는 괴물을 인간으로 만드는 일은 무기를 제대로 갖춘 전문가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괴물 사냥꾼’이 탄생한 것”이라고 말했다.

판타지를 쓴다는 건 완전히 새로운 세계관을 창조해내는 일 같지만 사프콥스키는 “톨킨은 그렇게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는다”고 했다. “나에게 가장 중요한 건 스토리다. 스토리가 가장 먼저, 다음이 플롯, 세계관은 그다음이다. 스토리 위에 내게 아름다운 인상을 준 어떤 장소를 묘사해 덧입힐 뿐”이라고 했다. ‘위쳐’의 등장인물들은 그리스 비극 속 주인공처럼 운명을 희롱하다 벌을 받지만 그는 “책은 책일 뿐 나의 철학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며 선을 그었다. “독자들은 자기 운명과 싸우는 주인공을 좋아한다. 책은 재미있어야 하기 때문에 그런 인물을 등장시킬 뿐이지 내가 그런 사람이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나는 단어를 만지작거리는 장인(artisan)일 뿐이다.”

‘당신은 왜 쓰는가’는 모든 독자가 작가에 관해 갖는 궁금증. 사프콥스키는 껄껄 웃으며 “내가 그 답을 모른다는 걸 당신도 알 텐데” 했다. “나는 언제나 말한다. ‘글쓰기는 수업을 듣는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다. 네 안에 ‘작가(writer)’가 있어야만 한다’고. 언젠가 그 ‘작가’가 괴물처럼 폭발하는 순간이 오면 그때부터 글을 쓰게 되는 거다. 내 안에는 그런 게 있었을 뿐이다.”

사프콥스키는 “재미와 완결성을 추구할 뿐”이라 했지만 ‘위쳐’의 주제의식은 명료하다. ‘사람들은 왜 괴물을 믿는가’에 대해 게롤트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은… 괴물과 기괴한 것들을 생각해 내길 즐긴다네. 그러고 나면 자기 자신이 좀 덜 기괴하게 여겨지거든. 술에 취해 돌아다닐 때나 사기 칠 때, 도둑질할 때, 가죽 허리띠로 마누라를 팰 때, 늙은 조모(祖母)를 굶주리게 놓아둘 때, 덫에 걸린 여우의 몸에 거름 치우는 쇠스랑을 찔러 박을 때, 혹은 세상에 남은 마지막 유니콘에게 화살을 꽂을 때, 사람들은 자기보다 새벽녘에 집집마다 훑고 다니는 모라(아이를 훔쳐가는 괴물)가 훨씬 더 나쁘다고 생각하고 싶어 한다네. 그렇게 하면 마음이 훨씬 가벼워지거든. 그리고 삶도 더 단순해지고.”

/타이베이=곽아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