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키보드

미하엘 초코스 지음|에쎄|360쪽|1만7000원

흰 가운을 입은 의사가 메스로 거침없이 시체 피부를 가른다. 그 속만 들여다보면 금세 사인을 알 거란 듯이. CSI 시리즈 등 유명 수사물에서 흔히 묘사되는 법의학자의 모습이다.

독일 최고의 법의학자로 꼽히는 저자는 법의학의 역할이 드라마처럼 차가운 부검대에만 고정된 게 아니라고 강조한다. 의료 조작, 가짜 단서 등 죽음을 왜곡하는 악의를 꿰뚫는 게 진정한 법의학의 사명이란 것.

그에 따르면 법의학자들은 특수한 ‘죽음의 키보드’를 다룬다. 차가운 시체에 남은 범죄 흔적과 그 몸이 아직 따뜻할 때 일어났던 분노, 시기와 같은 인간 드라마를 함께 대조해 진실을 타이핑하는 키보드다. 예컨대 저자가 만난 한 살인범은 칼을 두고 서로 다투다 피해자를 사고로 찔렀다고 변명한다. 하지만 저자는 피해자 몸에 방어나 다툼의 흔적은 없고, 칼에 찔린 상처만 두 번 남았다는 사실을 통해서 범행의 잔혹함을 가리려던 거짓말을 밝혀낸다. 그에 따르면 이 죽음의 키보드 앞에선 타인의 편견에 휘둘리지 않는 태도가 가장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