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만의 요새

마사 너스바움 지음|민음사|440쪽|2만4000 원

‘미 투(Me Too)’ 운동이 왕성해지면서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공개적으로 성폭력 가해자를 고발하는 일이 빈번해졌다. “제도적 처벌은 느리고, 믿을 수 없다. 사회적 처벌만이 정답”이란 환호가 자주 뒤따랐다.

법철학·윤리학자로 시카고대 석좌교수인 저자는 이런 해결법이 자칫 ‘보복감정’으로만 그칠 수 있다고 말한다. 예술계 성추문에 대한 당장의 비난보다 그걸 감시할 조합에 힘을 실어주는 절차적 정의가 더 중요하단 것이다.

저자는 특히 과거 미국 사회에 여성을 자율성 없는 존재로 대상화하는 ‘젠더적 교만’이 만연했다고 지적한다. 1970년대 미국 배심원은 정숙하지 않다고 판단한 여성의 강간 피해는 인정하지 않거나, 죽음을 무릅쓸 만큼 격렬한 저항이 없으면 ‘합의된 성관계’라고 주장했다. 저자는 이런 역사를 딛고 “싫다”란 말이 교태가 아닌 거절임을 법적으로 인정받은 지금의 성취가 값진 것임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