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것과 죽은 것들 사이에 혼령의 세계가 있다. 태어나고 싶어 하는 혼령은 없다. 삶의 세계에서는 존재의 협소함과 무지, 채워지지 않는 욕망, 끝없는 부당함, 어지러운 사랑, 죽음을 겪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혼령 아이들은 만약 태어나게 되더라도 될 수 있는 한 빨리 혼령의 세계로 돌아오겠다고 약속한다.
나이지리아 소설가 벤 오크리의 장편소설 ‘굶주린 길’(문학과지성사)은 이러한 세계관을 소개하며 시작한다. 주인공 아자로도 태어나기를 원치 않았던 혼령 아이다. 하지만 자기 어머니가 된 여인을 위해 계속 살아가기로 한다. 맹세를 어긴 소년에게 혼령 친구들이 찾아오고, 아자로는 기이한 일들을 겪는다.
‘신비한 능력을 지닌 소년이 두 세계에 걸쳐 살면서,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초자연적인 위기 상황들을 이겨 낸다’고 적으면 어떤 분들은 해리 포터를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굶주린 길’은 그렇게 단정하지도, 밝지도 않다. 주인공뿐 아니라 작품 전체가 현실과 환상 사이에 놓여 있다. 현실과 환상 양쪽 모두 한편으로 달뜨고, 또 한편으로 구슬프다.
한국 독자에게 아프리카 민담의 정서는 익숙하고도 낯설다. 동아시아에서도 밤은 강력하지만, 낮 아래 있다. 귀신은 생전의 한에 연연하며, 도술을 부리는 동물들이 인간의 삶을 동경한다. ‘굶주린 길’의 밤은 낮 아래 있지 않다. 이곳에서 밤과 낮은, 서로 대화하며 하나의 거대한 꿈이 된다.
번역본으로 751쪽에 이르는 이야기는 뒤로 가면서 권투 선수이자 정치인이 되는 아자로 아버지의 비중이 커진다. 부패하고 혼란스러운 아프리카의 정치 현실을 비판하는 듯싶지만 그 또한 환상이 섞여 있다. 아자로 아버지의 투쟁과 이상주의도 너무 괴상해서 아자로와 읽는 이를 두렵게 한다.
오크리는 30대 초반에 발표한 이 소설이 부커상을 받으면서 세계적인 작가로 떠올랐다. 어린 시절 참혹한 나이지리아 내전과 정치적 혼란을 겪은 그는 현실과 환상이 섞인 이 작품에 대해 “내가 본 현실을 전통적 문학 기법으로 묘사하기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설명했다. 쉽지 않지만 매혹적인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