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피아노는 누군가 시켜서 하는 숙제였다. 재미없는 연습을 꿋꿋하게 견디면 언젠가는 끝이 난다고 믿으며, 하지만 그 끝이 언제 올지 모르는 채로 그저 무서운 선생님의 감시하에 떨면서 연습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나가키 에미코(57) 에세이 ‘피아노 치는 할머니가 될래’(RHK)를 읽다가 이 구절에서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피아노가 중산층 자녀들의 필수 교양으로 여겨지던 1980년대, 우리나라에서도 펼쳐진 풍경이지 않나요? 엄마에게 떠밀려 억지로 시작한 피아노, 지겹게 이어지던 ‘하농’ 연습, 올바른 자세를 잡는다며 손목에 올려놓은 지우개가 떨어질 때마다 자로 손등을 때리던 선생님….

이나가키는 아사히신문에서 논설위원과 편집위원으로 근무하다 만 50세에 조기 퇴직했습니다. 그 경험을 쓴 책 ‘퇴사하겠습니다’가 일본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화제가 되었죠. 이번 책엔 어릴 적 그토록 싫어했던 피아노를 40년 만에 다시 시작한 이야기를 썼습니다.

인생 후반에 들어서서야 비로소 ‘즐기기 위해’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지만 ‘더 잘 치고 싶다’는 욕심이 자꾸만 생겨납니다. 그렇지만 노화된 몸은 욕심을 따라가지 못하고 자꾸만 불협화음을 일으키죠. ‘앞으로 나아가겠다’는 마음을 버리고 어깨 힘을 빼고 피아노 앞에 앉게 되었을 때, 이나가키는 비로소 진심으로 피아노를 즐기게 됩니다. “젊은 사람은 목표를 높게 갖고 그 목표를 향해 전진하면 된다. 하지만 노인은 다르다. 멀리 있는 목표를 보지 않고 지금 눈앞에 있는 아주 작은 일에 전력을 다한다. 야망을 품지 않고 지금을 즐긴다. 여기에 생각지도 못한 아름다움이 있다. 노인은 현재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 ‘어른의 피아노’란 이런 것 아닐까요? 곽아람 Books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