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폭력
도러시 고 지음|최수경 옮김|글항아리|560쪽|3만원
펄 벅의 ‘대지’를 열심히 읽은 사람이라면 주인공 왕룽의 아내 오란이 자신의 큰 발을 얼마나 한스럽게 여겼는지 기억할 것이다. 오란은 어릴 때부터 종으로 팔려다니느라 미처 발을 싸매지 못했는데, 왕룽은 혼인할 때부터 이를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세월이 흘러 부자가 된 왕룽은 애첩 렌화의 자그마한 발을 못내 흐뭇해한다.
열 살 이하 소녀의 발을 천으로 꽁꽁 묶어 성장을 멈추게 해 3촌(약 10㎝) 미만의 기형적인 작은 발을 만드는 ‘전족(纏足)’ 풍습은 12~20세기 중국에서 대대적으로 유행했다. 19세기 중매인들은 혼기가 찬 여성의 어머니에게 “예쁘게 생겼나요?”가 아니라 “발 크기가 얼마나 되나요?”라고 물었다. 평범한 얼굴은 하늘이 주신 것이지만 잘못 동여맨 발은 게으름의 흔적이라 생각했다. 자그마한 발은 연꽃처럼 아름답다 여겨졌다. 전족용 신발은 ‘금련(金蓮)’이라 불렸고, 시인들은 작은 발로 위태하게 걷는 걸음을 ‘연보(蓮步)’라 찬양했다.
이러한 전족 풍습은 19세기 말부터 근절해야 할 악습, 즉 ‘적폐’가 된다. 이 시기 중국에 온 서양 선교사들은 전족을 이교도의 풍속으로 취급했다. 이들은 ‘하늘이 주신 발(天足)’을 망가뜨린 전족한 여성을 계도 대상으로 생각했다. 작은 발로 남성을 유혹하려는 ‘팜 파탈’로 여기기도 했다. 덩샤오핑의 개혁 개방으로 촉진된 ‘문화’ 붐 역시 전족한 여성을 낙후의 상징으로 봤다.
국가는 적극적으로 여성의 ‘발’에 개입했다. 1900~1930년 중국에서는 ‘방족(放族, 발 해방) 운동’이 활발하게 펼쳐졌다. 1917년 산시성에선 전족 근절 운동이 시작돼 검사원들이 가가호호 돌아다니며 여성의 양말을 벗겨 검사했다. 15세 이하의 여성은 묶은 발을 풀게 했고, 거부하면 가족이 벌금을 내야 했다. 남학생들에게 “전족한 여자와 결혼하지 않겠다”고 쓴 천 조각을 옷에 달게 하기도 했다.
그 후로 오랫동안 여성의 발을 싸매는 것은 억압으로, 그 발을 푸는 일은 해방으로 여겨졌다. 그렇지만 컬럼비아대 역사학과 교수인 중국계 학자 도러시 고(65)는 전족에 대한 단선적인 해석을 경계한다. “학계에서는 한결같이 반(反)전족 운동을 중국 여성 해방의 이정표라며 찬양했다. 하지만 내 결론은 그렇게 낙관적이지 않다.”
중국 여성학 분야의 권위자인 저자는 전족을 푼 여성의 발 자체에 주목한다. 사람의 몸은 밀가루 반죽이 아니기에 발 뼈가 굽어지고 새로운 근육이 자리 잡으면 띠를 풀어도 돌이킬 수 없게 된다. 정부에서 파견한 전족 조사팀에게 한 여성은 튀긴 꽈배기를 보여주며 “이 꽈배기를 말랑한 반죽 상태로 돌아가게 만들 수 있다면 내 발을 풀겠다”고 말한다. 전족용 신발을 벗겨낸 ‘해방된 발(解放脚)’은 전족보다 더 걷기 어렵고 더 기형적인 상태가 되어버린다. 기형의 발을 남에게 내보이게 된 것은 전족 여성들에게 수치였다.
그러나 정부는 무신경했다. 산시성의 한 관료는 피 묻은 전족 띠를 관청에 전시하고, 군중 앞에서 전족 띠와 전족 신발 냄새를 맡아 보이며 토할 것 같은 시늉을 하기도 했다. 저자는 “반전족 운동의 가장 두드러진 문제점은 전족 여성을 향한 혐오 시선이었다”면서 이렇게 말한다. “애초에 사람들의 생각과 태도를 바꾸도록 했던 것은 전족 여성이 고통받는 장면이었다. 그런데 오히려 이는 여성을 수동성 및 희생자다움과 더욱 연계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전족의 기원, 남성들의 기록을 통해 본 발에 대한 페티시즘, ‘금병매’의 주인공처럼 작은 발을 이용해 ‘신데렐라’가 되려 했던 여성들의 욕망…. 책은 문학과 역사, 인류학과 사회학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묶은 발’과 ‘푼 발’의 경계를 파고든다. 연구는 방대하며, 사유는 묵직하고, 서사는 흥미롭다. 500쪽 넘는 책을 통해 저자가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말은 이 문장으로 요약된다. “어떤 여성의 자존과 자유는 사실 또 다른 여성의 수치와 속박을 근거로 하여 획득한 것이었다.” 어떤 이의 ‘정치적 올바름’이 또 다른 이에겐 ‘폭력’일 수도 있다는 걸 기억하자는 것. 근대는 타고난 그대로의 발을 지닌 ‘모던 걸’을 환영했다. 그러나 그 이면엔 1920년대 소설의 한 장면처럼, 남편이 모던걸에게로 떠나자 발을 크게 만들려 애쓰다 지친 촌부(村婦)의 한탄이 있었다. “다른 건 다 쉬워. 하지만 발은 어쩔 수 없으니…” 원제 Cinderella’s Sist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