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바논 감독 다니엘 아르비드가 아니 에르노 작품을 각색해 만든 영화‘단순한 열정’의 한 장면. 2020년 칸영화제 진출작으로 국내 개봉을 앞두고 있다. /다음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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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문장으로 시작하는 소설이라면, 당혹스럽지 않겠습니까?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프랑스 소설가 아니 에르노(82) 대표작 ‘단순한 열정’의 첫 문장입니다. 95쪽 분량의 이 짤막한 소설은 잘 나가는 40대 여성 작가가 유부남인 30대 동구권 국가 외교관과 나눈 밀회의 기록을 담고 있습니다.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소설에서, 화자인 여성은 처음부터 끝까지 남성과 사랑을 나눈 기억을 회고합니다.

문학이란 곧 자유와 동의어이기에, 문학의 세계에서는 불륜이든 뭐든 허용되겠지만 문제는 이 소설이 아니 에르노 자신의 자전적인 이야기에 바탕한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각색도 거의 거치지 않고 정말 자신의 이야기라는데서요. ‘단순한 열정’ 출간 10년 후 에르노는 1988년 9월~1990년 4월 쓴 일기를 모은 ‘탐닉’을 발표하는데 파리 주재 소련 대사관 직원이었던 열세 살 연하 남성과의 불륜 내용입니다.

이런 작품을 문학이라 할 수 있을까요? 소설의 화자는 응수합니다.

글쎄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불륜이란 상대 배우자의 영혼을 파괴하는 행위인데, 예술이라는 핑계 아래 그 이야기를 만천하에 까발리면 상대 배우자는 무엇이 되나요? 아무리 문학이라 해도 지켜야 할 최소한의 경계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문학도 결국 인간의 영역에 있는 일이니까요.

[아니 에르노 “이 열정은 글쓰기와 똑같다, 죽더라도 상관없다”]

서울에서 편지가게 ‘글월’을 운영하는 문주희씨의 책 ‘편지 쓰는 법’(유유)에서 읽었습니다. ‘편지가게’라니 뭐하는 곳일까, 궁금했는데 편지지와 편지 봉투, 우표, 필기구 등 편지 쓰기에 필요한 것을 소개하고 판매한다네요. 편지와 관련된 책도 준비하고, 익명의 사람에게 편지를 쓴 후 다른 이가 쓴 편지를 가져가는 편지 교환 서비스도 마련해 놓았다고요. 저자가 일하는 편지가게 두 곳에 찾아오는 손님은 매달 평균 1800명. 손으로 쓰는 편지가 드문 일이 된 디지털 시대의 진풍경입니다.

책은 편지의 첫머리 시작하는 법과 마무리하는 법은 물론이고 편지봉투 작성법, 편지지 고르는 법 등을 소개합니다. 우체통과 우체국 이용법까지 설명하는 걸 읽고 있자니 정말로 편지가 우리 일상에서 사라져 ‘반가운 그 옛날의 것’이 되었구나 싶어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하루에 한두 통씩 꼬박꼬박 편지를 쓰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해외펜팔은 물론이고 국내 펜팔까지 했던 중학교 때요. 마음 속 이야기에 누군가 응답해준다는 사실이 좋았습니다. 수업시간이면 노트에 편지지 끼워놓고 필기하는 척하며 편지 쓰곤 했던 그 소녀는 편지의 시대가 저문 30년 후에도 여전히 매주 독자 여러분께 편지를 쓰고 있는데….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나를 만든다’는 격언이 문득 생각납니다. 곽아람 Books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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