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의 재발견
다니엘 핑크 지음|김명철 옮김|한국경제신문|328쪽|1만8000원
가치 있는 삶
마리 루티 지음|이현경 옮김|을유문화사|312쪽|1만6000원
1981년 겨울 프랑스. 벨기에행 기차가 파리역에 멈춰서자, 스물두 살 미국인 브루스의 옆자리에 갈색 머리의 또래 여성이 앉았다. 인사로 시작한 둘의 대화는 술술 이어졌다. 오래지 않아 두 사람은 손을 잡고 있었다. “이번 역에서 내려요.” 기차가 벨기에의 한 역에 닿자 여자가 일어서며 말했다. 망설이던 브루스는, 닫히는 기차 문을 멍하니 지켜봤을 뿐이었다. “지금도 그녀를 따라 기차에서 내렸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합니다.” 60대가 된 브루스가 ‘후회의 재발견’ 저자 다니엘 핑크와의 인터뷰를 마치며 말했다.
“무슨 일이든 후회하지 말라!” 위인들의 격언이, 서점의 자기계발서가 말한다. 우리는 왜 지나간 과거의 고통을 자꾸만 끄집어낼까. 뻥뻥 이불을 걷어차도 달아나지 않는 후회는 삶을 갉아먹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후회는 제어할 수 없는 인간의 본능. 이번 주 BOOKS에선 마음속에 피어오르는 후회를 다스리는 법을 다룬 책 두 권을 소개한다.
‘후회의 재발견’(원제 The Power of Regret) 을 쓴 다니엘 핑크는 심리학, 과학, 경제학을 통해 사회변화를 예측하는 미래학자다. 2021년 미국인 4800명의 후회 사연을 모은 ‘미국 후회 프로젝트(American Regret Project)’와 105국 1만6000여 명의 후회를 수집한 ‘세계 후회 설문조사’를 통해 후회라는 행위를 분석하고, 인간은 후회로 인해 더 나은 존재가 된다고 결론 내린다. 후회는 크게 4가지로 나뉜다. ‘그 일을 했더라면’ ‘더 대담했다면’ ‘도덕적인 행동을 했다면’ ‘관계에서 손을 내밀었다면’. 저자는 이런 후회가 삶의 건강한 충동이라고 말한다. “인간은 자기 파괴적인 마조히스트가 아니다. 과거에 대한 부정적 생각은 우리 뇌의 판단 속도를 늦춰 신중하게 하고, 더 넓은 선택지를 고려하게 해 우리를 알게 모르게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준다.”
물론 깊은 흉터로 남기 전에 치료해야 하는 후회도 있다. 저자가 제시하는 치유법은 생각과 감정을 일기와 대화로 드러내는 ‘자기노출’. “언어는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이리저리 휘몰아치는 불쾌한 감정을 그물에 가두어 고정하고 분석할 수 있게 해준다.” 후회로 인한 불안감의 크기를 글과 말로 묘사하고 나면, 지금의 고통이 생각보다 별것 아니라고 느낄 때가 많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 텍사스대학교 연구 결과, 감정적 어려움에 대해 짧은 글을 쓰는 것만으로도 병원 가는 횟수가 줄어들고, 성적이 향상되며, 심지어 실업자의 경우 더 빨리 일자리를 찾는다. 단, 긍정적인 경험은 반대로 글을 쓰거나 남에게 얘기를 할수록 그 성취감이 일찍 사라진다는 연구도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후회에 대한 또 다른 주의사항은 ‘하지 않고’ 후회하는 것보다 ‘하고’ 후회하는 것이 훨씬 낫다는 것. 저자는 “했던 일에 대한 후회는 ‘Ctrl+Z(키보드의 되돌리기 단축키)’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자신의 말실수로 인해 누군가와 관계가 단절된 경우가 있다면, 우리는 그 결과와 상관없이 사과를 통해 과거의 부채감을 덜어낼 수 있다. 또한 ‘적어도’ 관계 단절 이상의 최악의 상황은 면했다는 마음가짐을 통해 고통을 완화할 수 있다. 하지만 ‘하지 않고 지나가버린 일’은 되돌리기가 불가능하다. 미래의 다른 가능성에 집중해야 한다는 불안한 선택지만이 남는다. 1981년 겨울, 만약 브루스가 과감히 벨기에 역에서 내렸다면, 옆자리의 인연과 결실을 보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환갑의 나이까지 마음에 그녀를 품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고통스러운 과거도 우리의 삶 일부임을 인정하고 함께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가치 있는 삶’의 주제다. 이 책은 인간의 기질과 ‘좋은 삶’을 구성하는 요소에 대한 철학자들의 이론을 풀어낸다. 프로이트, 니체, 아도르노와 같은 철학의 거인들 역시 과거의 고통이 우리의 삶을 더 단단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견해를 제시한다. 캐나다 토론토대학 문학 교수인 저자는 프로이트의 렌즈를 빌려 인간이 과거의 고통을 재해석해 얻을 수 있는 힘을 설명한다. “과거로 인해 상처를 입었다는 인식은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동기가 된다. 또한 후회를 재해석해 삶을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다. 과거 인간관계에서 받은 상처가 있다면, 그 덕에 공감 능력이 향상될 수 있었음을 깨닫는 것이다.” 과거 고통을 응시하는 것은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삶의 기술’이라는 것이다.
‘후회의 재발견’ 저자 다니엘 핑크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한국인들은 미래만을 응시하고 과거는 보지 말아야 한다는, ‘후회하지 않는 삶’에 대한 신념을 갖고 있다”고 썼다. 하지만 사람이 자꾸만 과거를 뒤돌아보는 이유는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이유와 같다. 후회할 것을 두려워하다가 후회할 일을 벌이고 있진 않은지 되돌아보게 하는 두 책. 마지막 장에 이르면 후회가 아닌 자신감을 재발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