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슈 사이드는 “구성원의 다양성은 반복 업무 등의 단순한 과제를 처리할 땐 방해 요소가 될 수 있으나, 정책 입안과 같은 복잡한 사회 문제를 해결할 땐 필수적인 가치”라고 말했다. /위즈덤하우스

“단지 정치적 올바름 때문에 다양성을 추구하자는 게 아닙니다. 능력주의가 최고의 결과를 내기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했을 때, 복잡한 현대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다양한 사회적 배경과 통찰을 갖춘 구성원을 두루 확보하는 것이 도움이 되기 때문이죠.”

최근 몇 년간 한국 능력주의에 대한 여러 논의가 있었지만, 능력주의를 비판하는 담론에서조차 다양성과 탁월성은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았다. 개인의 능력을 가장 중시하는 능력주의 원칙에 문제가 많을지라도, 조직의 성과를 위해서라면 실력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주장들이 이어졌던 것. 반대로 조직 내에 소수 계층을 비롯한 다양한 성별, 사회적 배경의 구성원을 받아들이는 것은 조직이 효율성에서 손해를 보더라도 ‘정치적 올바름’이란 대의를 위해 추구해야 하는 것으로 이해되곤 했다.

‘다이버시티 파워’(위즈덤하우스, 원제 Rebel Ideas) 를 쓴 매슈 사이드(52)는 영국 탁구 국가대표 출신이자 ‘더 타임스’의 언론인. 그는 15일 기자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능력주의에 가려져 있던 다양성의 중요함을 이렇게 설명했다. “팀 단위로 업무를 하는 현대 사회에선 다양성이 조직의 성공과 직결됩니다. 한 조직에 비슷한 배경과 생각을 가진 10명이 모여 있으면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이라고 해도 하나의 아이디어만 나오게 되죠. 반면 같은 인원이라도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있다면, 그만큼 많은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가 말하는 다양성은 크게 두 가지 의미를 말한다. 성별, 인종, 계층 등의 다양함을 말하는 ‘인구통계학적 다양성’. 그리고 관점, 사고방식 등 생각의 다양성을 뜻하는 ‘인지적 다양성(cognitive diversity)’이다. 조직의 발전과 효율을 위해선 이 두 가지 다양성을 갖추는 것이 필수 조건이라는 것이 그의 말이다.

그는 정치인들의 정책 실패 역시 다양성 부족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영국의 전 총리 마거릿 대처의 몰락을 앞당긴 ‘인두세(人頭稅∙poll tax) 폭동’. 1980년대 말 영국 정부는 개인의 자산을 기준으로 부과하던 지방 세금을 사람의 머릿수대로 부과하는 방식으로 바꿨다. 일부 저소득층 가구가 연간 수백만 원의 세금을 더 내게 된 반면, 부유층 중에선 1000만원 이상을 절약하는 경우가 생겼다. 저소득층에게 부담을 전가한 이 역진세(逆進稅)는 시민들의 반발을 샀고, 결국 1990년 20만여 명의 성난 군중이 런던 거리로 나와 주변의 상점을 약탈하고, 자동차를 불태우는 폭력 시위로 이어졌다.

매슈 사이드는 “당시 정부 각료들은 웅장한 저택에서 자라 사립학교를 다닌, 옥스퍼드∙케임브리지 출신 엘리트들이었다. 이들은 모두 똑똑했지만, 다양한 경험이 중요한 정치 영역에서 이런 동질적인 집단은 ‘재앙’이 된다”고 책에 썼다. 집단 내부의 엘리트들은 서로 비슷한 관점만을 공유하며 자신의 삶이 ‘보편적인 것’이라는 착각을 하게 된다. 실제로 인두세 시행 이후 세금으로 납부할 현금이 없는 노부부들이 사회적 문제가 되자, 당시 대처 총리의 최측근 각료 니컬러스 리들리는 이렇게 말한다. “그래도 노인들은 언제라도 집에 걸려 있는 그림을 팔 수 있잖아요.”

저자는 사회 혁신을 이끄는 동력은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의 상호작용이라고 설명했다. “보스(BOSE)의 창업자 아마르 보스는 미로 같은 MIT 건물에서 우연히 다른 분야의 과학자들과 교류하게 되며 세계적 음향기기 업체를 만들 수 있었죠. 다양성의 가치를 알았던 스티브 잡스는 픽사(Pixar) 사옥을 디자인하며 건물 중앙에 화장실을 배치해 다른 부서 직원들 간의 만남을 유도했습니다” 그는 이어 마이크로소프트를 조직 내 다양성을 가장 잘 실천하고 있는 조직으로 꼽았다. “사티아 나델라가 2014년 CEO가 된 이후 다양성과 기업 이익 모두 크게 증대됐죠. 그는 조직의 중간 리더들이 다양한 사람들의 관점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것을 강조해 구성원들의 열의와 창의성을 끌어올렸습니다.”

능력주의와 다양성 사이에서 사그라들지 않고 있는 한국 사회의 논쟁에 대해 묻자, 그가 당부했다. “한국은 고위직 대부분을 남성이 차지하고 있는데, 다양성이 가져다주는 이점을 생각하면 쿼터제와 같은 방법도 필요합니다. 다양성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누군가는 단기적으로 불이익을 볼 수도 있겠죠. 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나 아마존 등 다양성을 확보한 조직들이 경쟁에서도 승리한다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지금 보다 중요한 것은 누군가의 ‘누락된 목소리’를 듣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