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거서 크리스티 자서전’(황금가지)은 상당히 당혹스러운 책이다. 나는 크리스티가 인류 문명이 지속되는 한 계속해서 읽힐 불멸의 작품을 한 편도 아니고 수십 편 남긴 위대한 거장이라고 믿는다. 그런데 이 대가가 어떻게 글을 썼으며, 문학이 뭐라고 여겼는지 알고 싶다는 마음으로 책을 펴 들면 곧 어리둥절해진다. 그런 내용이 없는 건 아니지만, 비중이 무척 작다.
전체 808쪽인 이 자서전에서 ‘추리소설을 써야겠다’는 결심은 315쪽에 이르러서야 나온다. 그 앞까지는 즐거운 유년 시절, 가족, 여행, 연애, 결혼의 추억 이야기다. 딱 입담 좋은 할머니의 수다를 듣는 기분이다. 그런데 19세기에 태어난 이 할머니는 속으로 아주 단단하시다. 인생과 결혼, 교육에 대해 자신만의 견해가 확고하다. 살인범에게는 사형이 마땅하다며 목소리를 높인다.
315쪽 이후에도 여행, 친구, 딸, 두 번째 남편 이야기를 창작 과정보다 훨씬 더 길게 서술한다. 반면 집필에 대한 크리스티의 태도는 알수록 팬으로서 맥이 빠진다. 첫 작품을 발표하고는 ‘설마 책을 더 쓰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한다. 소설을 애써 성취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지 않았다고, 글 쓰는 것은 바로 돈이 되어 좋았다고 한다. 마플양을 어떻게 창조했는지 기억이 희미하고, 그렇게 성공한 캐릭터가 될 줄도 예상하지 못했다는 고백에 이르면 감탄을 해야 할지 화를 내야 할지 모르겠다. 그냥 천재였나?
내가 권유하는 이 책 읽는 법은 다음과 같다. 저자가 위대한 소설가임을 잊고 읽어라. 그러면 세상과 겪은 불화, 내면의 갈등, 창작의 고통이 나오지 않는다고 불평할 이유도 사라진다. 대신 사랑하는 이들에게 둘러싸여 모험과 유머가 가득한 삶을 아주 재미있게, 또 주체적으로 산 여인을 보게 된다. 자기 인생에 대해 “나는 원하는 것을 했다. 여행을 한 것이다”라고 멋지게 선언하는.
누구나 그렇게 살고 싶으리라. 책장을 덮고는 삶을 재미있게 만드는 요소들에 대해 오래 생각했다. 물론 불행하면 재미없지만, 행복이 끝없이 이어진다고 재미있는 삶도 아닌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