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워크
탠시 E.호스킨스 지음|김지선 옮김|소소의책|364쪽|2만1000원
243억 켤레!
2019년 한 해 동안 전 세계에서 생산된 신발의 숫자다. 전 세계 신발 공장은 매일 6660만 켤레의 신발을 만들어냈다. 팬데믹이 덮친 2020년은 인간이 굳이 이렇게 많은 신발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걸 증명해 냈다. 외출이 줄자 사람들은 꼭 필요한 신발만 샀다. 그해 신발 생산량은 전년보다 약 40억 켤레가 줄었다.
1953년 무렵 영국 제화 교본에서는 직장에 다니는 젊은 여성이 출근용 신발, 주말용 신발, 샌들, 부츠, 운동화, 침실 슬리퍼 등 신발 여섯 켤레를 소유한다고 가정했다.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평균적인 영국 여성’은 신발 스물 네 켤레를 갖고 있다. 그중 몇 켤레는 한 번도 신은 적이 없다고 한다. 사람들이 이미 신발장을 꽉 채우고도 계속해서 새 신발을 사는 이유는 뭘까? 라코스테 제화 부문 총괄 책임자인 마크 헤어는 단언한다. “그냥 신발이 계속 나오기 때문이다.”
저자는 가디언 등에 기고하는 영국 저널리스트. 과한 소비를 부추기는 신발 산업을 추적, 비판적인 시각으로 분석한다. “패션은 그 정의상 변화가 핵심이다. 기업들은 이 권력을 이용해 신발이 더는 그저 필수품이 아니게 만들었고 우리가 완벽하게 멀쩡한 물건을 보면서 후지다는 느낌을 받게 만들었다. 그 결과 우리는 망가졌거나 낡아서가 아니라 유행에 안 맞는다는 이유로 물건을 바꾸게 된다.”
신상 운동화가 부모 ‘등골 브레이커’인 것은 한국에서나 영국에서나 마찬가지다. 2020년 런던에서 열린 스니커 콘(운동화 마니아들이 수집품을 전시·판매·교환하는 박람회) 행사장. 열네 살 레이먼드는 런던의 빈곤층 거주 지역에 살지만 아빠에게 매달 용돈 100파운드(15만7000원)를 받는다. 프라다 운동화를 팔려고 나온 그는 “길을 가다가 별로인 운동화를 신은 사람을 보면 그다지 친하게 지낼 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고 말한다.
신발 산업은 새 운동화를 탐내는 청소년의 부모 등골뿐 아니라 제3세계 노동자들의 골수를 빼먹으며 성장한다. 뻔한 이야기 같은가? 저자는 “나이키 운동화 한 켤레에 베트남 소년공 수백 명의 눈물이 녹아 있다”는 식으로 단순하게 이야기를 풀어가지 않는다. 이른바 ‘아동노동’에 대한 관점부터가 신선하다. 국제 노동기구에 따르면 파키스탄 등 남아시아 전역에는 5000만 명의 재택노동자가 존재한다. 이들은 공장에서 하청을 받아와 가족들과 함께 신발 바닥을 꿰맨다. 파키스탄 재택노동자의 75%는 여성. 아이들은 자연스레 어머니에게 일손을 보탠다. 파키스탄이 전 세계의 80% 생산을 담당하는 축구공 가죽을 꿰맬 때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아동노동’에 초점이 맞춰지며 비난을 받자 기업들은 재택노동 자체를 금지하면서 작업장과 공장으로 생산을 옮겨갔다. 이슬람 국가 파키스탄에선 여성이 공공장소에서 일하는 걸 금한다. 이 조치로 수많은 파키스탄 여성들이 밥벌이를 잃었다. “아동노동이 발생하는 이유는 가족이 극도로 가난해서 작업 할당량을 채우려면 아이들도 같이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동노동을 근절하겠다고 사회에서 여성이 돈을 벌도록 허용하는 아마도 유일한 방법을 금지한다면 역효과만 낳을 뿐이다. 아동노동을 막으려면 재택 노동자의 임금과 노동조건을 개선해야 한다.”
‘짝퉁’ 명품 신발 산업은 왜 문제가 되나? 저자는 단순히 명품 브랜드의 상표권을 침해하기 때문에 비윤리적이라고 하지 않는다. 위조 제품을 둘러싼 총체적인 규제의 부재가 환경에 재앙이 된다고 말한다. “위조 제품 공장들은 독성 염료나 화학물질 사용에 관한 것은 물론이고 독성 방류수 배출에 관한 법적 규제를 전혀 받지 않는다.” 신상 신발을 리뷰하는 유튜버들이 가품 업체와 모종의 계약을 맺고 가품 신발을 파는 온라인 사이트를 홍보하는 현실도 지적한다. 이는 결국 소비자의 피해로 돌아온다. 복제품 신부용 구두를 구입하러 온라인 사이트에 신상정보를 기입한 여성이 신분을 도용당해 복제품 신발 사이트 판매자로 둔갑한 영국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도 짝퉁 신발을 사고 싶은가? 때로는 이성보다 감성에 호소하는 것이 사회정의의 실현에 유익하다. 저자는 제안한다. “그 신발은 어디에서 왔는가?”를 한번 질문해 보자고. 한때 부모들은 음식 남기는 자녀에게 ‘그 밥이 어디에서 왔는가’를 생각해 보라고 가르쳤다. 이제 아이가 사 달라는 그 신상 신발이 어디서 왔는지를 짚어줄 때다. 원제 Foo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