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혜정 국제갤러리 이사

윤혜정은 영화 전문 잡지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해 패션 잡지 ‘보그’ ‘하퍼스 바자’ 등을 거쳐 미술계에서 일한다. 최근 마크 로스코, 우고 론디노네 등 현대 예술 거장 28명의 삶과 철학을 조명한 책 ‘인생, 예술’(을유문화사)을 펴낸 그가 ‘미지의 예술 세계로 나를 데려다 주는 책’ 5권을 추천했다.

나는 예술가들에게 축지법을 배운다. 흔히 축지법은 속도 문제로 여기지만 실은 땅을 접는 법, 즉 인식 문제다. 불확정성과 불확실성의 안갯속에서 뚜벅뚜벅 걸어온 이들은 그 길에서 창조한 작품을 통해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소소한 일상을 살던 나는 그들의 질문에 마음과 사유를 실어 부지불식간에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지구 반대편 세상에 가 닿게 된다.

루이스 부르주아, 이모젠 커닝햄, 김수자 등 ‘위대한 여성 예술가들’ 속 400여 여성 예술가는 세상과 충돌하고, 반목하고, 화해하며 일구어 온 예술 세계 속으로 나를 데려다 놓는다. 서로 다른 시대를 산 이 존재들을 이정표 삼아 거닐다 보면, 과소평가된 이들을 호명하여 기억하고자 하는 교훈적 의도 이면에서 생생한 삶과 다채로운 서사를 발견하게 된다. 과연 “예술은 인생을 예술보다 더 흥미진진하게 한다.”

여행을 가면 내가 발붙인 이 세상이 좁다는 사실에 놀라고, 드넓은 미지의 세계를 목격하며 또 한번 놀란다. 이들의 인생과 예술을 만나는 경험은 그 어떤 여행보다 나를 겸허히 만드는 동시에 생기를 부여한다. 독자에게만, 관객에게만 주어지는 행복하고 결정적인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