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 아래

수면 아래

이주란 지음 | 문학동네 | 200쪽 | 1만3500원

“그냥, 난 우리가 괜찮았으면 좋겠어. 각자의 자리에서, 많은 순간에, 정말로 괜찮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해인과 우경은 이혼했지만 가끔씩 만난다. 동네를 산책하고 밥을 먹는다. 어린 시절 추억을 이야기하다가 흐르는 정적. 둘은 베트남에서 아이를 잃고 돌아온 뒤로 헤어졌다. 서로를 사랑하지만 아픔을 견딜 수 없었다. 아이를 잃은 그날의 이야기를 여전히 말하지 못한다. 아픔을 수면 아래에 묻어둔 채 살아간다.

삶은 어떤 방식으로든 이어진다. 우경은 아이를 잃어버린 베트남에서 일하자는 요청에 떠난다. 해인은 “같이 가자”는 그의 제안을 거절한다. 해인은 우경이 없는 곳에서 일상을 살아간다. 애호박 부침개를 부치고, 친구와 산책을 한다. “저는 시시한 것들을 사랑하고 시시한 것은 대체로 슬프니까요.”

이번 소설은 2019년 제10회 문학동네 젊은작가상 등을 받은 작가가 쓴 첫 장편소설이다. 작년 ‘주간 문학동네’에 연재된 내용을 다듬어 냈다. 작가는 “서로를 미워하며 헤어질 예정이었는데 서로를 그리워하며 헤어지게 되었다. 그냥, 그런 마음이 남았고 두 사람은 그 마음을 그대로 둘 예정이다”라고 ‘작가의 말’에 밝혔다.

이슬비 같은 소설이다. 비가 내리는 걸 모르고 있다가, 책장을 덮는 순간 옷이 젖었다는 걸 깨닫게 된다. 수면 아래에 묻어둔 아픔을 꼭 이겨내야 할 필요는 없다. 섣불리 물에 손을 뻗었다가 파도를 일으키기 십상이다. 대신 같이 밥 먹고, 수다 떨고, 산책을 나가보는 건 어떨까. 시시콜콜한 일상이 더 큰 위안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