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할머니, 제인 | 신순재 지음 | 이주미 그림 | 웅진주니어 | 52쪽 | 1만4000원
집에 들어서는 소녀에게 엄마가 걱정스레 묻는다. “어디 아프니? 얼굴이 빨개.” 몸이 아픈 건 아닌데…. 가슴은 두근대고 볼은 화끈거린다.
“사랑에 빠졌구먼.” 손녀의 마음을 알아본 건 할머니였다. “첫사랑에 빠졌을 때 나도 그랬거든. 멀리서 보이기만 해도 가슴이 뛰었지. 턱수염이 아주 멋졌어. 난 그를 ‘회색 턱수염’이라고 불렀지.” 할머니의 첫사랑은 정말 뜻밖의 존재였다.
침팬지 연구의 세계 최고 권위자 제인 구달(88)은 1960년 아프리카 탄자니아의 곰베로 들어가 야생 침팬지들과 40여 년을 함께했다. 작가는 “이 책은 ‘구달에게 막 사랑을 알아가는 손녀가 있다면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하는 호기심에서 시작됐다”고 말한다.
소녀는 옆 반에 자주 놀러간다. 지우개며 샤프심을 빌린다는 건 핑계. 소년이 뭘 좋아하고 누구와 노는지 보고 싶다. 하지만 소년은 그때마다 슬그머니 사라져버린다.
할머니의 첫사랑도 그랬다. 빽빽한 나무숲과 가시덤불을 헤치고 찾아가도, 멀리서 할머니가 보이면 그는 숨기 바빴다.
소녀와 할머니의 첫사랑 이야기가 극영화처럼 절묘하게 서로 맞물리며 스며든다. 소녀는 할머니를 통해 성급하게 상대의 세계 속으로 뛰어들어선 안 된다는 걸 깨닫는다. 다가가려면 오히려 몇 걸음 물러나 기다려야 한다는 걸, 사랑에는 ‘거리’가 필요하다는 걸 조금씩 알아간다.
“내가 한 일은 기다리는 것뿐이었어. 날 받아들여주기를. 내가 그의 세계를 침범하거나 방해하지 않는다는 걸 믿어주기를. 스스로 내게 마음의 문을 열어주기를.”
데이비드 그레이비어드(회색 턱수염). 처음 할머니의 마음을 받아준 침팬지에게 붙여준 이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