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 에버츠 지음|김성훈 옮김|한국경제신문|396쪽|1만8500원|

러시아 모스크바의 고리키 공원. 이곳에선 오직 체취만으로 데이트 상대를 만나는 ‘냄새 맡기 데이트’ 행사가 종종 열린다. 참가자들은 자신의 땀이 묻은 솜을 제출한다. 각 솜의 냄새를 맡은 후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체취의 주인을 찾아 데이트를 신청한다. 이 책의 저자는 처음엔 시큰둥했지만 운명처럼 한 냄새와 맞닥뜨린다. 그 냄새 앞에선 취미나 취향 같은 건 무의미해진다. 상대방과 연결되지 못할까 봐 극도의 불안감마저 느끼게 된다. 대체 왜?

정답은 땀에 있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사랑은 후각에 큰 영향을 받는다. 호감을 느끼려면 상대의 체취에 반응해야 하는데 체취는 땀에 의해 결정된다. 저자는 “우리가 무심코 닦아냈던 땀방울에 인간 관계와 신체에 대한 지침서가 담겨 있다”고 말한다.

땀의 계절이 돌아왔다. 실내의 에어컨 장막을 벗어나는 순간 습기와 더위에 절여져 수백만개의 땀구멍에서 수증기 맺히듯 땀이 나고, 만원 대중교통을 타다 보면 어디선가 시큼하고 불쾌한 냄새가 몰려온다. 대소변이라면 어느 정도 참을 수도 있겠지만, 땀은 의지만으로 참을 수 있는 생리 현상이 아니다. 하지만 캐나다 출신 과학 저널리스트로 ‘이코노미스트’ 등에 기고해 온 저자에 따르면, 우리의 땀만큼 ‘신사적인’ 냉각 시스템도 없다. 땀으로 체온을 조절하는 동물은 인간이 거의 유일하다. 땀을 흘리지 않고 체온을 유지하려면 강아지처럼 혀를 내밀어 계속 헐떡거리거나, 아메리카 대륙의 맹금류 콘도르처럼 자신의 대변을 뒤집어써야 한다. 그에 비하자면 인간의 땀은 ‘자동 시스템’. 땀의 증발과 함께 열이 소모되면서 피부의 온도가 내려간다. 저자는 “땀은 인류의 진화가 찾아낸 최고의 체온 조절 방법”이라고 말한다.

인간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을 때도 60와트 전구만큼의 열을 생산한다. 체내 온도를 관리하지 못하면 장기가 손상돼 신체 기능이 멈출 수 있다. 이를 막기 위해 우리는 땀을 흘린다. /게티이미지코리아

저자는 땀이 우리 몸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부터 시작해, 땀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밝힌다. ‘땀을 흘려서 몸 안의 독소를 빼내야 한다’는 주장은 땀에 대한 대표적 오해다. 우리는 땀을 흘리기 위해 돈까지 써가며 사우나와 헬스장으로 향하지만, 땀도 제대로 알고 흘려야 건강에 이롭다. 저자는 “땀을 통해 온갖 화학물질이 빠져나오는 것은 사실이지만, 여기엔 독소뿐 아니라 몸에 유익한 영양분과 호르몬도 있다”고 설명한다. 우리 몸은 독소를 제거하기 위해 땀을 흘리지 않는다. “독소들은 피 속에 섞여 있다가 땀구멍을 통해 우연히 배출되는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사우나가 좋은 것은 독소를 제거해서가 아니다. 심장 박동수를 높여 ‘운동한 듯한’ 느낌을 들게 하고, 순환계 활동을 촉진해 혈류를 원활하게 하기 때문이다. 몸 안 독소를 제거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땀을 빼는 것보단 몸의 전문 해독 장치인 콩팥 건강에 신경을 써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땀방울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신체의 정보 값이 많이 담겨 있다. 저자는 땀에서 나는 냄새가 “우리의 건강과 감정 상태를 말해주는 진실의 등대 역할을 했다”고 한다. 우리 몸에 있는 땀샘 중 하나인 아포크린땀샘에서 분비물이 나올 때 피부에 서식하는 각종 미생물들과 섞여 화학적 노폐물을 만들어내는데, 이 노폐물의 냄새가 우리의 고유한 냄새를 만든다. 땀 냄새는 체내 노폐물이 잘 배출되고 있는지, 무엇을 먹었는지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저자는 체취와 건강 상태가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스웨덴 카롤린스카연구소 실험심리학자 매츠 올슨의 실험도 소개한다. 건강한 사람 8명에게서 평소 체취와 독소를 주입했을 때의 체취를 추출해 40명의 실험 참가자에게 맡아보게 했을 때, 참가자들은 독소를 넣었을 때의 체취를 훨씬 역하다고 느꼈다.

이론과 전문 용어로 무장한 과학 서적이라기보단, 저널리즘의 방식을 충실히 따른 ‘땀 취재기’다. 땀의 세계를 파헤치기 위해 세계 곳곳을 누볐다. 독일 ‘사우나 극장’ 공연 관람기를 통해 땀에 담긴 과학 지식을 풀어내고, 미국의 한 냄새 연구기관에선 직접 겨드랑이 냄새를 채취하며 우리의 체취가 어떻게 형성되는지 설명한다. 데오드란트, 스포츠 음료 같은 땀의 ‘파생상품’ 역사도 같이 담겨 있다.

땀의 ‘과학’이라는 제목에 뒷걸음치지 않아도 된다. 책 곳곳에 배어있는 저자의 유머는 ‘과학’과 ‘번역서’라는 심리적 장벽을 낮춘다. 땀구멍을 통해 본 땀의 세계는 우리의 생각보다 많은 것이 담겨 있다. 저자는 “이제는 땀을 흘리는 즐거움을 발견할 시간이 됐다”고 말한다. 즐거움까지는 아니더라도, 땀으로 젖었을 때의 짜증이 조금은 줄어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