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들의 산책
닉 블랜드 지음·그림 | 홍연미 옮김 | 웅진주니어 | 40쪽 | 1만4000원
어느 날, 바다에서 고래들이 걸어나왔다.
첫 발견자는 망원경으로 바다를 보던 아이. 머리에 울퉁불퉁 혹이 난 거대한 혹등고래가 곧추서서 뒤뚱뒤뚱 걸어왔다. 아이는 환호성을 지르며 반겼다. 이마가 툭 튀어나온 향유고래가 보물선 금화로 생선을 잔뜩 사먹자 생선 장수들은 신이 났다. 엄니가 유니콘 뿔처럼 멋진 일각고래는 발레 ‘고래의 호수’에 출연했는데, 덕분에 발레리나들은 힘이 엄청 세졌다. 하얀 벨루가가 웃는 얼굴로 지나가면 아이들은 앞다퉈 그 몸에 물을 뿌려줬다.
하지만 고래와 사람의 ‘땅 위 동거’는 오래갈 수 없었다. 공원의 자전거는 고래 몸무게를 못 견뎌 바퀴가 터졌다. 범고래들이 줄넘기를 하는 통에 포장길이 깨져 나갔다. 시장에도 식당에도 생선이 바닥났고, 고래가 먹고 버린 생선뼈 따위 쓰레기에 갈매기들이 몰려들어 도시는 엉망이 됐다.
“고래는 살던 곳으로 돌아가라!” “우리는 고래와 함께 살 수 없다!”
팻말과 확성기를 든 어른들이 요란한 시위를 시작했을 때, 한 아이가 고래에게 묻는다. “왜 바다를 떠나 땅에서 살기로 한 거야?” 입장 바꿔 생각해봐야 알 수 있다. 고래를 남획해 멸종 위기로 몰아넣은 것도, 해저를 긁는 촘촘한 그물로 먹이를 약탈한 것도, 각종 쓰레기로 바다를 오염시킨 것도 사람이었다. 어족 자원은 황폐해지고, 세계 곳곳 바닷가에 죽은 채 떠밀려온 고래 배 속에선 수십㎏의 플라스틱 쓰레기가 발견된다.
사람은 땅 위에서, 고래는 바닷속에서 다시 평화롭게 살 수 있을까. 책의 결말에 해답이 있다. 병들어가는 바다, 해양생물과 인간의 공생 문제를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된다. 다양한 고래의 특징을 잘 살린 그림체가 정감 있고 고래와 사람이 섞여 살며 벌어지는 소동의 묘사가 재치 넘쳐서, 책장을 넘기는 내내 슬며시 웃음짓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