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의 시간
줄리 리스콧-헤임스 지음｜박선영 옮김｜온워드｜400쪽｜1만8000원
“직장에서 부모님의 공식 역할은 없다. 상사와 어려운 이야기를 해야 할 때, 부모님과 함께 가고 싶은 마음이 들 수 있다. 하지만 부모님을 대동해야 한다면 애초에 그 직업을 가질 만큼 성숙하지 못한 것이다. 절대 부모님을 데려갈 생각은 하지 말아야 한다.”
저자는 대학을 갓 졸업한 사회 초년생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어엿한 성인에게 이 말을 하는 이유는 “고용주들이 점점 이 부분을 우려하고 있기 때문”. 저자 줄리 리스콧-헤일스(55)는 스탠퍼드대 신입생 학부 학장과 학부생 상담 과장 등을 역임하며 수백명의 20대를 만났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2016년 출간한 ‘헬리콥터 부모가 자녀를 망친다’는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어른이 되는 법’을 조언한다. 법적 성인이 되어서도 부모에게 의존하고 제 할 일을 스스로 찾아 하지 못하는 ‘어른아이’의 증가는 미국에서도 심각한 사회문제. 저자는 ‘어른’을 이렇게 규정한다. “인간은 다른 사람의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어린 시절을 거쳐 또다시 다른 사람의 보살핌에 의존해야 하는 삶의 마지막에 도달한다. 그 사이에 있는 달콤하고 멋진 시기, 그때가 어른으로서 지내는 시간이다. 그동안 우리는 우리 자신을 제대로 돌볼 수 있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어른의 핵심 정의다.”
저자가 강조하는 ‘어른됨’의 가장 중요한 요건은 ‘자립(自立)’이다. 그는 이를 “자기 인생에 책임을 느끼는 것”이라 정의한다. “더는 부모님이 내 필요를 충족할 책임이 없음을 알고 ‘수평적 관계’를 발전시키는 것”이라고도 말한다. 정기적으로 병원 가기, 의사의 진단에서 궁금한 점 물어보기 등의 ‘건강관리’부터 직접 해야 한다고 말한다. 어떤 조언을 읽다 보면 ‘설마 요즘 20대들이 이 정도일까’ 싶어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된다. ‘약속을 지키고 의사표현 정확히 하기’가 대표적인 예. “실제로 나는 한 교수에게 트위터로 이런 메시지를 받았다. ‘젊은이들이 볼 수 있게 책에 좀 써주실 수 있을까요? 약속을 잡았으면 어쨌든 나타나야 한다고 말입니다.’” 저자는 “시간이 괜찮으냐”는 질문에 ‘아마도’ ‘지금 상황에서는 괜찮아’ 처럼 흐리멍덩하게 답하지 말고 가부를 확실히 표현하라고도 이른다.
‘어른아이’ 뒤엔 과잉보호하는 부모가 있다. “현대 부모들이 양육에서 이상하리만큼 ‘완벽’에 집착한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다.” 그는 부모들이 아이들의 작은 행동마다 ‘완벽해!’라고 칭찬하면 이들은 교사나 직장 상사도 자신을 완벽하다고 칭찬해주길 바란다고 썼다. 모든 걸 다 해준 부모 때문에 시행착오를 경험하지 못한 딸이 “실수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지 않은 엄마가 원망스럽다”고 털어놓은 사례도 소개한다.
직장 생활에 대한 팁도 흥미롭다. 나이나 경력이 많은 사람에게 존경심을 보이고, 커피 심부름 같은 허드렛일도 중요하며, 이직할 계획이 있더라도 최소한의 일만 하려 하지 말라는 등의 조언을 읽고 있자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직장 생활의 ABC는 비슷하다는 걸 깨닫게 된다.
촌철살인의 충고가 담겼지만 훈계 일변도는 아니다. 중간중간 저자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며 따스하게 격려한다.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한 저자는 변호사 일이 맞지 않아 괴로웠다. 부모님을 실망시키는 게 두려웠지만 용기를 내 스탠퍼드대 교직원으로 전직했다. 학생들을 상담하며 보람을 찾았고 직장을 그만둔 이후엔 문예창작 대학원에 들어가 글을 쓰기 시작했다. “뼛속 깊이 책임감을 느낄 수 있는, 세상이 아무리 비웃어도 내 시간과 에너지, 돈, 마음을 쏟을 수 있는 대의(大義)를 생각해보기 바란다. 나는 ‘열정을 쏟을 일을 찾으라’는 말 대신 ‘자신만의 이유를 찾으라’는 말을 더 좋아한다. 자신의 행동을 떠받치는 가치를 알면, 행동과 선택, 결정은 그를 토대로 이루어질 수 있다.” 원제 Your Turn: How To Be An Adul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