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용으로 배포된 신간 봉투를 뜯다 보면 서글픈 감정이 밀려들 때가 있습니다. 책 제목을 살필 때 특히 그렇습니다. ‘다정’ ‘무해’ ‘선의’….최근 책 제목에서 인기 있는 단어들입니다. 미국 인류학 책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최은영 소설 ‘내게 무해한 사람’, 판사 출신 작가 문유석이 쓴 ‘최소한의 선의’ 등.
책 제목은 시대의 욕망을 반영하고, 욕망이란 결핍의 다른 얼굴입니다. 순하고 착한 단어를 내세운 제목들을 볼 때마다 ‘요즘 참 힘든 사람들이 많구나’ 생각하게 됩니다. 무례한 상황에 자주 처하니 다정함을 갈구하게 되고, 유해한 것들에 둘러싸여 있으니 무해함을 추구하게 되며, 악의에 찬 사람들을 많이 접하다 보니 선의를 갈망하게 되는 것 아닐까요? 이런 책들의 주독자가 2030 여성이라는 점까지 생각이 미치면, 젊은이들이 버텨내기에 우리 사회가 참 팍팍하구나 싶어 안타까워집니다.
미국 출판인 앙드레 버나드의 책 ‘제목은 뭐로 하지?’(모멘토)에 따르면 소설가 F. 스콧 피츠제럴드는 좋은 제목의 요건을 이렇게 짚었답니다. “독자의 눈길을 끄는 동시에 호기심을 자극하고, 맞춤하면서도 책 내용을 포괄하고, 오 헨리의 소설 제목들을 재탕한다는 느낌을 주지 않고, 허약하고 감상적이며 맹하지도 않아야 한다.”
피츠제럴드의 말을 읽다가 ‘허약하고 감상적이지 않은’이라는 구절에 밑줄을 그었습니다. 책 제목이 허약하거나 감상적이지 않으려면 읽는 이들이 속한 세상이 단단하고 굳건해야겠지요. ‘다정’ ‘무해’ ‘선의’를 허약한 단어라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같은 제목에 독자들이 반응했던 그 옛날이 지금보다는 건강한 시대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