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마켓이 작년 여름, 기업 가치 3조원을 인정받으면서 1800억원의 대형 투자를 유치했을 때 가장 놀란 곳은 어디일까. 유통 대기업 3사는 당연히 포함되었을 것 같다.

신세계, 롯데쇼핑, 현대백화점 세 곳 모두 당근마켓의 기업 가치에 미치지 못한다. 매장도 없고, 고용 인원은 훨씬 적으며, 영업이익도 아직 없는 이 스타트업에 투자자들은 어떤 기대를 가졌는지 궁금한 분이라면 ‘신뢰 이동’(흐름출판)을 권한다.

이 책을 안 것은 한 팟캐스트 덕분이었다. 매주 한 권씩 경영 경제 혹은 사회과학 책을 골라 밀도 높게 소개하는 ‘직독잡썰’에서 이 책을 다룬 방송을 듣고 바로 구입했다. 저자 레이첼 보츠먼은 1978년생으로 옥스퍼드 MBA 초빙 교수이자 신뢰 전문가로 활약하는 사상가이기도 하다. 2010년에 출간한 첫 책에서 공유 경제 시대가 올 것을 전망해서 명성을 얻었고 이 책은 2017년에 나온 두 번째 책이다.

그의 주장은 간명하다. 인간의 역사에서 신뢰라는 개념은 세 구간으로 나뉜다. 첫째는 서로가 서로를 잘 아는 농경 사회에서 작동하던 ‘지역적 신뢰’다. 둘째는 산업혁명 이후 법과 계약 기반으로 작동해온 ‘제도적 신뢰’다. 셋째 ‘분산적 신뢰’ 시대는 정부, 미디어, 기업, 종교 등 제도권 기관에 대한 대중의 신뢰가 하락하면서 발생한 공백을 2010년대 급속히 발전한 기술이 메꾸면서 등장했다. 엘리트 집단과 전문가가 가지고 있던 영향력은 저물고, 한 번도 본 적 없는 낯선 이들이 남긴 별점과 평가와 댓글이 나의 의사 결정을 좌우한다. 오늘 점심 무엇을 먹을지도, 내가 누구에게 투표할지도.

이제 우리는 에어비앤비로 모르는 사람 집에서 잘 수 있게 되고, 우버를 통해 모르는 사람 차에 탈 수 있게 되었다. 매월 1600만명이 당근마켓 매너 온도를 확인하며, 물건을 사고판다. 개인과 개인이 연결될 때마다 신뢰를 상호 평가하는 습관을 만든 기술 플랫폼은 힘이 세다. 타인과 이룬 신뢰 기반으로 열리는 새로운 협업과 혁신의 기회는 상상 이상으로 클 것이기에. “신뢰는 거대하고 측정 가능한 경제적 가치를 지닌다.”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말이다.

박소령 퍼블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