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바이러스를 없애지 못한다. 책은 역병을 고치지 못한다. 그래도, 이 기나긴 비상사태 세상에도 책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분명히 있다. 사람의 마음을 공감해 준다느니 용기를 준다느니 하는 그런 의욕은 내려놓고 생각해 본다. 그렇다. 우리는 책이라는 필수품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일본 작가 안도 유스케 소설 ‘책의 엔딩 크레딧’(북스피어)에서 읽었습니다. ‘책의 엔딩 크레딧’이란 책의 맨 뒷페이지에 있는 판권(版權)을 의미합니다. 출판사마다 양식이 다르지만 보통 저자 이름 아래 출판사 대표, 편집자, 디자이너, 마케터 등의 이름과 인쇄·제작 업체명을 표기합니다. 소설은 이 중 판권에는 개인이 아닌 회사 이름으로 등장할 뿐인 ‘그림자 스태프’, 즉 인쇄소 직원들의 세계를 다룹니다.
주인공 우라모토 마나부는 인쇄 회사 영업부의 문예서 담당. 인쇄가 ‘모노즈쿠리(장인 정신의 결과물)’로 인정받아야 한다 믿는 그는 말합니다. “스토리를 완성하는 것만으로는 책이 되지 않습니다. 인쇄 회사나 제본 회사가 책을 만드는 것입니다.”
디지털 미디어가 득세한 세상에서 인쇄 매체를 만드는 일의 의미를 종종 생각합니다. 인쇄 매체가 사라지는 날이 오면 어떡하지, 걱정이 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라모토는 생각합니다. “책은 없어지지 않는다. 다만 천천히 스러져 갈 것이다. (…) 스러져 가는 것을 지키는 인간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일이기 때문에 더욱 좋아하지 않고서는 계속해 나갈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 자리에 있는 것은 비장감이 아니라 계속 만들어 나가는 것에 대한 긍지와 성취감이다.” 오늘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책의 날’, 종이와 잉크라는 책의 물성(物性)을 아끼는 분들과 이 책을 함께 읽고 싶습니다. 곽아람 Books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