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진자 폭증 소식에 움츠러들어 봄을 기대할 여유도 없었는데, 부르지 않아도 봄은 이미 와 있더군요. 창밖 나무들은 아직 헐벗고 메말랐지만 곧 연둣빛 새순이 움트며 싱그럽게 물이 오르겠지요. 어릴 적 읽은 동시에 “쏘옥 고갤 내민 새싹의 초록 덧니”라는 표현이 있었는데 올봄엔 유독 그 구절이 생각납니다.
“나는 지금 겨울 나무를 그리고 있어요. 일부는 이미 작은 싹을 틔웠습니다. 나는 할 수 있는 한 많은 나무를 그리려고 마음먹고 있습니다. 그런 다음에는 그 나무들이 변화하는 동안 다시 반복해서 그릴 겁니다.”
영국 화가 데이비드 호크니(85)가 미술평론가 마틴 게이퍼드에게 2020년 3월 15일 보낸 편지의 한 구절입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작업하던 호크니는 2019년 봄 프랑스 노르망디에 작업실을 얻습니다. 햇살 아래 찬연히 빛나는 다양한 꽃들을 그리고 싶어서죠. 이듬해 봄 코로나 사태로 봉쇄령이 내리지만 호크니는 개의치 않습니다. “나는 이 봄을 기록해 두고 있어요. 아주 흥분됩니다. 봄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나는 멋진 큰 나무에 핀 벚꽃을 막 그렸습니다. 우리가 있는 곳에서 유일한 벚나무인데 지금 눈부시게 아름답습니다. 다음에는 잎새들이 돋아 나올 겁니다. 여름의 짙은 녹음을 보기 시작할 때까지 나는 계속해서 그릴 것입니다.”
호크니와 게이퍼드의 대화를 엮은 책 ‘봄은 언제나 찾아온다’(시공아트)에서 읽었습니다. 원제는 ‘Spring cannot be Cancelled’. 직역하자면 ‘봄은 취소될 수 없다’는 뜻이지요. 화폭에 담은 나무들을 오랜 친구인 양 사랑하게 되었다는 호크니는 말합니다. “예술의 원천은 사랑입니다. 나는 삶을 사랑합니다.” 곽아람 Books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