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의 기쁨 | 토머스 채터턴 윌리엄스 지음 | 김고명 옮김 | 다산책방 | 312쪽 | 1만6000원

아버지는 흑인 노예의 손자였다. 흑백 인종 분리가 횡행하던 시절 미국 남부서 미혼모의 자식으로 태어났다. 이 악물고 공부해 오리건대학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런 아버지는 아들이 힙합 문화에 빠져 깡패 흉내 내며 비속어로 자조의 메시지를 내뱉는 걸 안타까워했다. “네가 좋은 말을 공들여서 길렀다고 해 보자. 그런데 그 말이 진흙탕에서 당나귀나 노새들과 뒹굴고 있으면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 있겠니? 어디 그뿐이냐. 정말 위험한 일은 그 말이 자기가 당나귀나 노새라고 믿어버리는 거야. 얼마나 큰 비극이냐?”

흑인 소년들이 으레 그렇듯 래퍼나 운동선수가 되고 싶었던 아들에게 아버지는 단호히 말했다. “우리 집에서 운동선수나 연예인이 나오길 기대한 적 없다.” 아버지는 18세기 영국 시인 토머스 채터턴의 이름을 딴 아들이 시인이나 철학자가 되길 바랐다. 아들에게 “너는 대학에 가야 한다”고 북돋았다. 계획표를 짜서 억지로 공부시켰고, “공부가 너희 일이니 정당한 노동에는 정당한 보수가 따라야 한다”며 결과가 좋을 땐 용돈을 두둑이 쥐여줬다. 대학(조지타운대)에 진학한 아들은 힙합만이 흑인문화의 전부가 아니라는 걸 깨닫는다. 재즈를 듣게 되고, 할렘 르네상스 문학에 관심을 가진다. “더 넓은 세상이 존재하고 내가 그 세상을 원하며, 나도 그 세상을 누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종 문제에 관해 가장 도발적인 비평가’로 불리는 토머스 채터턴 윌리엄스(41)가 에세이 ‘배움의 기쁨’(다산책방)에 적은 이야기다. 책은 워싱턴포스트에 실려 열광적인 반응을 얻었던 그의 에세이를 토대로 했다. ‘힙합시대 흑인 문화의 타락’을 주제로 한 그 글에서 윌리엄스는 “힙합이 흑인 문화의 대표처럼 여겨지면서 사람들은 흑인들이 힙합 가사처럼 돈만 밝히고 폭력적이라는 선입견을 갖게 됐고, 흑인 문화는 정체되고 말았다”고 주장했다. 윌리엄스를 이메일로 만났다.

서재에 앉아 있는 토머스 채터턴 윌리엄스. 그는“아버지의 여러 가르침 중 인생은 스스로 개척하는 것이라는 교훈을 가장 귀하게 여긴다”고 했다. /다산책방

-책의 원제 ‘Losing My Cool’은 무엇을 뜻하나?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힙합에 경도된 문화에서 성장하며 흑인 남성이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이 ‘멋(cool)’이라 여긴 내가 이제는 철이 들었다는 것이다. ‘lose one’s cool’엔 ‘화가 났다’는 뜻도 있다. 나는 내 또래 흑인들이 편협한 시각으로 자기 삶에 장애물을 만드는 현실에 화가 나 있었다. 삶을 제약하는 장애물이야말로 우리 앞 세대들이 목숨 걸고 깨트리려던 것 아니던가.”

-1980년대 힙합 시대가 도래하면서 미국 흑인의 삶에서 극기와 기상이 훼손됐다고 책에 썼다.

“나의 아버지 세대는 백인과 동등한 자유를 얻기 위해 투쟁했다. 그들의 노력은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 인종차별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그래도 지금 우리는 분명 아버지 때와는 다른 미국에서 살고 있다. 많은 내 친구들이 가난이라든가 탄압이라 할 만한 것을 겪어본 적이 없다. 그렇지만 위 세대의 어떤 진지한 목표의식은 사라졌다는 이야길 하고 싶었다.”

-당신 책은 결국 비주류라는 이유로 세상을 탓하기보다는 주류의 자세로 당당히 살아가는 법에 대한 이야기인 것 같다.

“그것이 내가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의 핵심이다. 주류에 동화된다고 해서 자신을 배신하거나 상실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각고의 노력 끝에 얻는 결실이며, 그 결실을 거두었을 때 비로소 마이너리티 공동체에 속하면서도 주류에 영향을 미칠 힘을 가지게 된다. 무조건 주류의 대척점에 서는 것은 비주류에게 대체로 불리하게 작용한다.”

-그렇지만 흑인이 자기 정체성을 긍정하는 것 또한 중요한 일 아닌가?

“흑인의 정체성은 무엇이고 백인의 정체성은 무엇일까? 나는 다 허상이라 생각한다. 한때 제이 지(유명 힙합 가수)에게 느끼던 동질감을 소크라테스와 도스토옙스키에게도 느끼게 됐을 때 진정한 해방감을 맛보았다. 정체성이란 피부색보다 훨씬 복잡한 차원에 있다.”

-힙합 문화가 흑인 권리 향상에 긍정적인 측면을 끼친 측면도 있다. 힙합을 비판했다고 비난을 겪지는 않았나.

“맞다. 그 음악엔 이질적인 사람들을 하나로 만드는 힘이 분명히 있다. 책이 출간된 후 비판도 많이 받았는데 재미있게도 뻔히 예상되는 인종적 반응이 아니었다. 많은 흑인이 나의 메시지에 공감한 반면, 주로 진보적 백인이 내가 흑인이 처한 악조건을 모른다는 식으로 비판했다.”

-그렇지만 모든 흑인에게 당신 같은 아버지가 있는 건 아니다.

“나의 아버지에게도 그런 아버지는 없었다. 나는 내가 행운아라는 사실을 항상 기억한다. 그리고 나와 달리 스스로의 힘으로 인생을 일으킨 사람들을 존경한다.”

-책에 대한 아버지의 반응은?

“아버지는 내 책을 내리 다섯 번이나 읽으면서 거의 모든 문장에 밑줄을 그었다. 내 책을 무척 좋아하셨지만 모든 부분에 동의했는지는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