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
자오팅양 지음|김중섭 옮김|이음|444쪽|2만5000원
“천하(天下)에는 바깥이 없다(無外).”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 이후로 서구식 ‘국민국가’(nation state)는 나(안)와 너(밖)를 나누는 기준이 됐다. 나와 너의 갈등은 1·2차 세계대전은 물론 오늘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가져왔다. 저자는 이런 국민국가 질서가 전쟁과 무정부 상태를 낳았다며 대안으로 ‘천하 체계’를 내놓는다. 그는 “(안팎의 구별을 없애는) 천하 이론은 전쟁과 작별하는 출발점”이라고 썼다. 그가 말하는 천하는 진시황이 통일한 지리적 의미의 천하(중국)와는 다른, 개별 국가 상위에 존재하는 통치체계를 말한다.
저자는 여씨춘추(呂氏春秋)에 실린 일화를 통해 천하 체계를 설명한다. 형(荊)나라 사람이 활을 잃어버렸는데 찾으려고 하지 않았다. 왜냐고 물으니 “형나라 사람이 잃어버리고 형나라 사람이 주울 것이니 뭐하러 찾는가”라고 말했다. 공자는 “형나라를 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평했다. 저자는 “형나라 사람은 온 국민이 하나라는 경지에 도달했고, 공자는 세계 만민이 하나라는 경지에 도달했다”며 “이것이 천하무외의 원칙”이라고 했다. 유토피아에 대한 중국판 답이다.
저자는 중국사회과학원 연구원이고, 그가 주장하는 천하 개념은 중국의 ‘일대일로’ ‘인류운명공동체’ ‘중국몽(中國夢)’ 같은 정책에 원용되고 있다. “천하는 중국에서 온 개념이지만 세계의 것이며 어느 특정 국가의 소유가 아니다”라는 주장을 순진하게 받아들이기는 불편하다. 그러나 국민국가를 단위로 한 세계질서는 계속해서 결함을 드러냈다. 더 나은 질서를 상상한다는 점에서 책이 던지는 질문은 의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