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 최종 후보 6인에 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밤에 볼로냐 라가치상에 ‘여름이 온다’가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제가 사랑하는 동시대의 작가들과 최종 후보에 함께 한다는 사실이 명예롭고, 이 시대 그림책의 중요한 순간에 있게 되어 기쁩니다.”
세계 여러나라에서 그림책을 펴내며 널리 인정받아 온 이수지 작가가 지난해 펴낸 책 ‘여름이 온다’(비룡소)로 22일 세계적 권위의 아동문학상인 이탈리아 볼로냐 라가치상 픽션 부문 ‘스페셜 멘션’(우수상에 해당)에 선정됐다. 지난해 중국 작가 차오원쉬엔(曺文軒)의 글에 이수지 작가가 그림을 그린 ‘우로마’(책읽는곰)로 같은 상을 받은 데 이어 2년 연속 수상이다. 이 작가는 “‘여름이 온다’를 세계에 소개할 기회가 생겨 기쁘고, 무언가 계속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흐름 안에서 함께 할 수 있어서 정말 즐겁다”고 했다. 작가는 같은 날 국제어린이도서협의회(IBBY)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상’(이하 안데르센상) 일러스트레이터 부문 최종 후보로도 선정되는 겹경사를 맞았다. 2016년 한국 작가 최초로 최종 후보에 오른데 이어 두번째다.
◇비발디의 ‘여름’과 아이들의 물놀이
라가치상은 매년 3월말 열리는 세계에서 가장 큰 어린이책 도서전인 이탈리아 볼로냐 도서전이 수여하는 상. 올해는 61개국에서 전년보다 630건 늘어난 2215건의 작품이 출품됐다. 픽션 부문에만 1200여 건의 작품이 몰렸다. 이 중에서 칠레, 프랑스 작가의 책과 함께 이수지 작가의 ‘여름이 온다’까지 단 세 권 만이 우수상에 해당하는 ‘스페셜 멘션’에 선정됐다. 대상에 해당하는 ‘멘션’ 선정작은 캐나다 작가의 책이었다.
‘여름이 온다’는 작가가 비발디의 ‘사계’ 중 ‘여름’에서 영감을 받아 작업한 강렬하고 아름다운 그림책. 색종이 콜라주, 연필 드로잉, 수채, 아크릴 등 온갖 재료를 사용해 여름날 아이들이 신나게 물놀이를 하는 시골의 자연과, 생명력 넘치는 음악 연주회라는 두 개의 세계를 오간다.
책도 비발디의 ‘여름’처럼 3악장으로 구성돼 있다. 그림책으로는 드문 148쪽의 방대한 분량에 활달하고 자유분방한 그림들이 펼쳐진다. 작가는 시골서 살던 때 여름이면 마당에서 벌어지던 아이들의 떠들썩한 물놀이, 비발디의 ‘사계’를 집이 떠나가라 크게 틀어놓고 들었을 때 넋을 잃은 듯 감동하던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음악과 물놀이를 ‘여름’으로 그려내는데 착안했다. 악보의 요소들이 그림책 안으로 스며들고, 책날개의 QR코드로 실제 음악을 들으며 감상할 수도 있게 했다.
작가는 “음악도 그림책도 둘 다 ‘말 없는 예술’”이라며 “모든 감각을 열어 느끼고 보고 들으며 내 몸을 쓱 훑어서 빠져 나가는 느낌으로 책을 보시면 좋을 것 같다”고 말한다.
◇'어린이책 노벨상’ 한국인 첫 수상자 될까
이수지 작가가 최종후보로 선정된 ‘안데르센상’은 ‘어린이 책의 노벨상’으로 불린다. 1956년 제정 뒤 ‘괴물들이 사는 나라’의 모리스 센댁, ‘찰리와 초콜릿 공장’(로알드 달)의 그림작가 퀀틴 블레이크, ‘돼지책’과 ‘윌리’ 시리즈의 앤서니 브라운, 소설가 에리히 케스트너와 ‘삐삐 롱스타킹’의 창조자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등이 이 상을 받았다. 책 한 권이 아니라 아동문학에 대한 평생의 공헌을 평가하는 상. 선정 방식도 국가별 대표성을 띈다. 각국의 안데르센 위원회에서 자국 대표 작가를 뽑아서 국제어린이도서협의회(IBBY)에 추천하면, 다국적 심사위원 10명이 투표로 최종 수상자를 뽑는다. 6인 최종 후보로 선정되는 것 자체가 작가에겐 큰 영광으로 여겨진다. 올해 수상자는 다음달 21일 개막하는 볼로냐 도서전에서 발표될 예정이다.
이수지 작가는 영국에서 공부하고 세계 여러 나라에서 그림책을 펴냈다. ‘토끼들의 복수’로 ‘스위스의 가장 아름다운 책’ 상을, ‘이 작은 책을 펼쳐봐’로 글로브 혼 북 명예상을, ‘강이’로 한국출판문화상을 받았다. ‘파도야 놀자’와 ‘그림자 놀이’가 뉴욕타임스 우수 그림책에 선정됐으며, 고전을 독창적으로 재해석해 그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영국 테이트 모던 미술관의 아티스트 북 컬렉션에 소장돼 있다.
◇최덕규 작가 ‘커다란 손’도 라가치상 논픽션 부문 수상
이날 최덕규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 ‘커다란 손’(윤에디션)도 볼로냐 라가치상 픽션 부문 ‘스페셜 멘션’에 선정됐다. 아버지의 돌봄으로 자란 아들이 어른이 되어 늙어가는 아버지를 돌보는 이야기. 어른을 울리는 그림책으로 입소문을 타며 사랑받았다. 서울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최 작가는 그림책 ‘나는 괴물이다’, ‘우리집에 배추흰나비가 살아요’, ‘헤엄치는 집’ 등을 펴냈다. ‘여름이네 병아리 부화 일기’로 제20회 창비 좋은 어린이책 기획부문 우수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