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의 남편|하라다 마하 소설|북스피어|392쪽|1만5800원

“장차 일급 역사 자료가 될 일기를 쓰기 시작한 기념할 만한 오늘. 나의 아내는, 총리가 된다. 제111대 일본국 내각총리대신 소마 린코. 일본 최초의 여성 총리가 탄생하는 날이다.”

20XX년 9월 20일, 한 남자가 이런 일기를 쓰기 시작한다. 소마 히요리(相馬日和). 38세. 도쿄대 이학부 졸업. 젠다 조류 연구소 연구원. 일본을 대표하는 재벌 소마가(家)의 차남이다.

열다섯 살 위의 형 덕에 경영 부담 없이 좋아하는 새 연구를 하며 평온하게 살아온 그의 일상은 소수 야당 당수였던 네 살 연상의 아내 린코(凛子)가 일본 최초의 여성 총리이자 최연소 총리로 선출되면서 대혼란에 빠지게 된다. 집 앞엔 기자들이 진을 치고, 외출이라도 할라치면 ‘히요러’라 불리는 ‘오빠 부대’가 우르르 몰려온다. “매일 아침을 챙겨 먹이며 아내를 보필하겠다”고 ‘총리 남편’으로서 소신을 세웠건만 아내는 밥 먹을 새도 없이 바쁘고, 총리 보좌진은 그에게 “’이상적인 남편’의 이미지로 총리와 함께 ‘일본을 대표하는 부부’로 활약해 달라”고 주문한다. “소마 부부를 보면서 노년층이라면 ‘저런 사위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고, 젊은이라면 ‘부부라는 존재도 나쁘지 않으니 결혼해도 괜찮겠구나’라고 생각해야 한다. 초저출생 고령화 사회 현대 일본에서 고령자에게는 위안을, 젊은이에게는 결혼을 꿈꾸게 하는 모델이 되어야 한다.”

영화‘총리의 남편’중 한 장면. 다정다감한 조류학자 남편 히요리(오른쪽)는 일본 최초의 여성 총리인 아내 린코가 국회를 해산하고 총선거로 신임을 물어야 하는 위기에 처하자 선거 유세에 나서는 등 아내를 위해 헌신한다. /장고필름

2012년 장편 ‘낙원의 캔버스’로 스토리텔링 뛰어난 문학작품에 주는 야마모토 슈고로상을 받은 하라다 마하(原田マハ·60)는 새와 차(茶)를 좋아하는 ‘초식남’ 히요리가 국가 재정은 파탄나고 초고령화 사회로 접어든 일본 사회 개혁에 나선 아내 린코를 위해 음모와 협잡이 난무하는 정치판에서 분투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증세(增稅), 고용 활성화, 저출산 문제 같은 무거운 주제를 ‘히요리의 일기’라는 장치를 통해 코믹하고 경쾌하게 풀어낸다.

아름답고 용맹한 린코와는 어머니의 성화에 못 이겨 참석한 조찬 모임에서 만났다. 초청 연사가 갑자기 아픈 바람에 대타로 나온 린코에게 히요리는 한눈에 반한다. 갈망하던 데이트를 하던 날 히요리는 결심한다. ‘앞으로 무슨 일이 닥쳐도, 아무리 거센 폭풍이 몰아쳐도, 나는 당신을 지지하겠어. 그리고 당신을 따라갈 거야. 씩씩하고 굳세고 아름다운 당신을. 어디까지나.’

집권 여당 출신인 거물 정치인 구로 하라와 연립 내각을 세워 총리가 된 린코는 곧은 결기 덕에 국민들의 지지를 얻지만, 기성 정치인들과는 등을 돌리게 된다. 린코를 끌어내리기 위한 음모가 시작되고, 첫 번째 칼날은 순진해 보이는 남편 히요리를 향한다. 관저로 이사한 후 아내와 손 한번 잡아본 적 없어 외로운 히요리는 문어 모양 소시지 담긴 도시락을 미끼로 한 미인계에 넘어갈 것인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어머니와 형은 린코의 총리 취임을 기화로 가문의 이득을 꾀하라며 히요리를 압박하는데….

여야가 상대편 후보의 ‘배우자 리스크’를 들먹이며 연일 맹공을 퍼붓고 있는 대선 정국, 이 책을 펼치는 것만으로도 잠시나마 청량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금수저’이나 교만하지 않고, ‘배우자 찬스’로 제 이익을 챙기기보다 국가의 미래를 생각하며, 사소한 사고를 칠지언정 스스로 사태를 수습하는 이 여리지만 꿋꿋한 남편에게서 ‘진정한 외조(혹은 내조)’란 무엇인가를 본다. “그녀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자만’이었다. 이젠 무엇을 해도 괜찮다, 국민이 지지해 준다는 안이한 마음은 1mm라도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벌써부터 주의하고 있었다. 린코에 따르면 자만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생겨난다. 그러니까 내가 자만에 빠진 것 같으면 그때마다 지적해 줘, 히요리씨, 하는 묘한 부탁을 했다. 새 관찰하듯 아내를 감시하다가 ‘잠깐, 잠깐만, 자만에 빠졌군!’이라고 말하라는 걸까.” 원제 総理の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