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 시리즈가 400권을 돌파했다. 1998년 첫 책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를 펴낸 지 24년 만. 14일 출간된 400번째 도서는 고(故) 김수영 시인의 시론과 문학론을 엮은 ‘시여, 침을 뱉어라’다. 1980년대 범우사·을유문화사·금성출판사·동서문화사를 비롯, 2000년대 문학동네·창비·열린책들 같은 대형 출판사들이 세계문학 시리즈를 냈지만 400권 고지를 밟은 건 민음사가 처음이다.

지금껏 1만1000쇄를 거듭하며 2000만부 이상 발행됐다. 35국 175명 작가의 작품이 소개됐고, 165명의 번역자가 참여했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30인의 작품 74종도 포함됐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은 회사 창립 30주년이던 1995년 “새로운 기획, 새로운 번역, 새로운 편집”을 모토로 기획됐다. 민음사 박맹호(1933~2017) 당시 회장은 “미래 세대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선 세계문학을 읽어야 한다”며 원전에 충실한 한국말 번역을 주문했고, 초대 편집위원으로 평론가 김우창·유종호·안삼환·정명환이 참여했다. 당대 최고의 평론가의 이름이자, 영국·독일·프랑스 문학 전문가의 명단이기도 하다. 예술원 회장을 지낸 유종호 연세대 전 석좌교수는 “당시만 해도 정제되지 않은 번역을 한 세계문학 책이 대부분이었다”며 “세대를 넘어 읽힐 수 있는 작품을 선별해 전문 연구자에게 번역을 맡겼다”고 말했다. 셰익스피어⋅단테 등 고전문학부터 쿤데라, 마르케스, 카뮈, 헤밍웨이 등 현대문학 거장의 작품이 두루 포진했다. 영미·유럽에 편향된 작품 목록에서 아프리카·아시아 등 제3세계 문학도 추가했다. ‘구운몽’ ‘춘향전’ ‘홍길동전’ 같은 한국 작품도 14권 펴냈다.

한 손에 잡히는 세로 22.5㎝·가로 13.2㎝의 판형, 단색과 세계 명화가 단순하게 배치된 표지 디자인은 ‘세계문학전집’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독자들에게 가장 많이 사랑받은 작품은 J. D.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으로 2001년 출간돼 57만부 판매됐다. 가장 많은 작품을 리스트에 올린 작가는 1946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헤르만 헤세로 ‘데미안’ ‘유리알 유희’ 등 8종을 출간했다.

2015년 편집위원 제도를 없앤 민음사는 이제 문학 담당 편집자가 번역가나 연구자의 추천을 받아 출간작을 선정한다. 기준은 ‘오랜 시간 독자의 선택을 받으며 문학적 가치를 입증한 작품’. 400번째인 김수영 시인의 책을 엮은 이영준 경희대 교수는 “김수영은 지금도 읽히는 ‘탕진되지 않는 젊음’”이라며 “작가 이상의 작품처럼 김수영의 작품도 앞으로 버틸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