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리 필리포토가 그린 ‘지롱드 당원들의 마지막 연회’. 프랑스혁명 당시 지롱드 당원들이 몰락하기 전 콩시에주리 감옥에서 마지막 건배를 하고 있는 모습. /헬스레터

“연인끼리 가면 좋을 파인 다이닝 추천해 주세요.”

발렌타인데이를 앞두고 인터넷 게시판에 이런 글들이 올라오는 걸 보았습니다.

언젠가부터 ‘분위기 좋은 식당’ ‘고급 식당’ 같은 말 대신 ‘파인 다이닝(fine dining)’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이 유행이 되었더군요.

신간 ‘외식의 역사’에 이 ‘파인 다이닝’의 유래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외식의 역사

프랑스 혁명 당시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로 귀족들이 대거 숙청당하자

실업자가 된 귀족 대저택의 요리사들과 하인들이 일자리를 찾아 파리로 올라왔답니다.

이들이 식당을 열어 요리사는 주방을, 집사와 하인들은 접객을 맡았는데,

뼈대 있는 귀족 가문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방식대로 요리를 차려 내놓고 손님 접대를 한 것이

‘파인 다이닝’의 시대를 낳았다고 하네요.

혁명가들도 맛있는 건 좋아했고, 감옥에 갇힌 귀족들이 경비병들을 매수해 여기 음식들을 배달시켜먹었답니다.

[로베스피에르 공포정치가 불러온 ‘파인 다이닝’ 시대]

영화감독 노라 에프런(1941~2012) 산문집 ‘내게는 수많은 실패작들이 있다’(반비)에서 읽은 구절입니다. ‘로맨틱 코미디의 대가’라 불리는 에프런은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의 시나리오를 썼고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유브 갓 메일’ 등을 연출했죠.

영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식당에서 해리(빌리 크리스털)와 샐리(멕 라이언)가 남녀 관계의 거짓과 진실에 관하여 이야기 나누는 장면은 이 영화에서 오래 기억되는 명장면으로 꼽힌다.

달콤하고 유쾌한 그의 작품들처럼 낙관으로 실패를 딛고 일어난 이야기를 담은 글인 줄 알았더니 통렬한 어조로 말합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통념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동계올림픽이 한창입니다. 넘어지고도 다시 일어나 메달 획득에 성공하는 선수가 있는 반면, 넘어진 채 경기를 마감하는 선수도 있죠. 빙판에서 넘어진 중국 피겨 선수에게 과도한 비난이 쏟아지기도 했습니다. 역경을 딛고 일어서는 성공 스토리만이 올림픽의 교훈은 아닐 겁니다. 인생은 영화가 아니니까요. 우리네 삶도 언제든 실패로 얼룩질 수 있겠지요.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한 선수들에게 따스한 위로를 건넸으면 좋겠습니다. 곽아람 Books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