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틀그라운드
H. R. 맥매스터 지음|우진하 옮김|교유서가|704쪽|3만8000원
“북한 비핵화를 달성할 돌파구가 없어 보일수록 더 강력한 제재와 인권 유린 문제 고발 그리고 인터넷과 정보전을 포함해 북한에 대한 압박을 더욱 늘려야 한다.”
트럼프 정부의 대북(對北) ‘최대 압박 전략’(Maximum pressure campaign)을 주도한 허버트 맥매스터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신간 ‘배틀그라운드’에서 이렇게 말한다. 문재인 정부의 북한 비핵화는 사실상 무위로 돌아갔고 북한은 새해 들어 잇달아 동해상에 미사일을 발사하면서 도발을 감행하고 있다. 좌파 정부의 ‘햇볕정책’도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도 한계를 드러냈다. 그렇다면 최대 압박은 어떨까. 맥매스터는 최대 압박이 ‘제대로’ 이뤄진 적이 없다며 기대를 건다.
트럼프 정부가 들어오고 최대 압박 전략을 가동하면서 김정은은 2018년 돌연 유화적 제스처를 취한다. 평창 올림픽에 선수단을 보냈고, 문재인 대통령, 트럼프 대통령과 잇달아 회담에 나섰다. 맥매스터는 일련의 정상회담은 대북 압박 수위를 낮췄다고 지적한다. 그는 “나는 북미 정상회담에 회의적이었다”며 “최대 압박 전략은 시작 단계에 불과했는데, 김정은 정권에 대한 외교적·경제적 압박이 줄어들 가능성이 있었다”고 했다. 회담 이후 트럼프는 한·미 합동 군사훈련을 아무 대가도 받지 않고 연기했다. 압박이 줄어든 것이다.
북한은 미·북 정상회담을 미국을 끌어들여서 세계 다른 지도자에게 자신의 위상을 부각시킬 기회로 봤다고 맥매스터는 말한다. 대표적인 것이 2018년 북·중 정상회담이다. 이후 중국과 러시아는 입을 모아 제재 완화를 요구하면서 최대 압박 전략은 유명무실해졌다.
그는 ‘전략적 자아도취(strategic narcissism)’라는 개념으로 그간 미국의 실패를 설명한다. 국제정치학의 대가 한스 모겐소가 처음 내놓은 개념인데, 맥매스터는 이를 “미국의 전략적 자아도취는 ‘세상사가 미국의 결단과 계획에 따라 이뤄진다고 가정하는 관점’”이라고 재정의한다.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두 번째 미·북 정상회담이 대표적인 사례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협상 능력과 경제적 혜택이 주는 위력에 대해 지나친 확신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북한 주민들의 삶을 개선할 기회를 언제든 포기할 수 있는 독재자의 의지를 과소평가했을 수도 있다.”
전략적 자아도취는 곳곳에서 나타난다. 미국이 노력하면 중국이 자유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를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란 착각도 그렇다. 중국은 변하지 않았다. 권위주의 정치체제와 국가주도경제를 가진 채로 미국의 가장 큰 경쟁자로 부상했다. 전략적 자아도취는 미국의 전유물이 아니다. ‘햇볕정책’은 어떤가. 뒷돈을 받은 북한은 변화하지 않았고, 핵무기 개발과 미사일 개발은 현재 진행형이다.
그는 미국 정부와 국민에게 “미국의 최우선 과제는 한국과 일본의 화해를 이끌어내고 점진적으로 양국 관계를 강화해나가는 것”이라고 조언한다. 한국 입장에서 일본을 어떻게 용서하느냐고? 그럼 중국에 이용당할 것인지 그는 반문한다. “중국은 잔혹한 역사의 기억을 공유하며 한국 국민과 집권당이 품고 있는 일본에 대한 적대감을 이용하려는 것이다. 서울과 도쿄 사이의 긴장은 우리 공동의 적들(중·러)에만 이득이 될 뿐이다.”
‘남북 정상회담’에 솔깃해질 수밖에 없는 한국 입장에서 가장 귀담아들어야 할 말은 이것일 것이다. “같은 일을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가 나오길 비는 것은 광기(狂氣)다.” 단지 대화를 이어나가기 위해서 북한에 대한 제재를 완화하거나, 보상해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차기 정부가 제정신인지 파악할 수 있는 바로미터가 되어줄 말이다.
책은 북한뿐 아니라 러시아·중국·중동 등 미국이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를 지키기 위해 계속해서 싸워나가야 할 국가·지역을 분석한다. 34년 복무한 뒤 육군 중장으로 예편했고, 미국 베트남전 실패를 분석한 논문으로 역사학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줄곧 현실적이고 차분한 태도로 미국 국방·외교 정책에 고언을 건넨다.
군인정신과 애국심이 빛나는 책이다. 자신의 말을 듣지 않고 북·미 정상회담과 파리협정 탈퇴를 강행했고, 소셜미디어로 자신을 해고한 트럼프 대통령을 비난하는 대목은 없다. 존 볼턴 후임 국가안보보좌관이 책으로 트럼프를 맹비난한 것과 비교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