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윤석열, 심상정 추천.’
지난주 출간된 ‘전라디언의 굴레’(생각의 힘)는 앞표지 아래쪽에 적힌 광고 문구로 화제가 됐다. 호남 출신인 저자 조귀동씨가 스스로를 자조적으로 ‘전라디언’이라 일컬은 이 책의 뒤표지엔 세 대선 후보의 추천사가 나란히 실렸다. 출판사와 저자가 각 후보 캠프의 지인을 통해 추천사를 요청했고, 호남 표를 염두에 둔 후보들이 모두 수락했다는 후문이다. 출판사 관계자는 “후보들이 고료(稿料)를 받지 않았다. 정치인들은 보통 추천사 고료를 안 받는다”고 했다.
글항아리 출판사 이은혜 편집장이 지난해 낸 에세이 ‘읽는 직업’(마음산책)엔 소설가 김훈이 추천사를 썼다. 김훈은 내로라하는 스타 작가이지만, 고료를 받지 않았다. 이은혜 편집장은 “고료를 드리려 했다가 혼났다. 우리 출판사 책 애독자라시며 받지 않으셨다”고 했다.
이처럼 유명인이 고료 없이 써 주는 경우도 있지만, 책 뒤표지 추천사는 보통 ‘몸값’이 가장 비싼 글 축에 속한다. 원고지 2~4매에 20만~50만원 선. 한 편집자는 “필자가 더 요구할 경우 합리적인 선에서 더 드리기도 한다. 바쁜 일정에도 많은 분량을 썼을 경우 100만원까지도 드린다”고 했다. 신문·잡지 등의 원고료는 보통 매당 1만~2만원 선이다. 뒤표지 추천사는 업계 용어로 ‘표4′라 불리는데, 책을 만들 때 소통하기 편하도록 앞표지를 표1이라 하고, 앞날개, 뒷날개, 뒤표지에 차례로 번호를 매기던 관행에서 비롯한다.
출판사들이 비용을 감수하며 굳이 추천사를 받으려 하는 것은 책의 인상을 명료하게 만들어줘 독자들과의 거리를 좁히는 역할을 하기 때문. 신인 저자나, 국내에서 낯선 외국 저자가 쓴 책에 특히 추천사가 많이 붙는 이유다. 이러다 보니 유명인이나 각 분야에서 이름이 알려진 전문가에게 추천사가 몰린다. 과학 분야에서는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와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 심리학 분야에선 김경일 아주대 교수와 하지현 건국대 교수, 페미니즘 도서에선 여성학자 정희진씨 등이 섭외 1순위로 꼽힌다.
20~30대 여성들이 많이 읽는 소설·에세이 분야에서는 김금희, 이슬아, 임경선, 정세랑 등 젊은 여성 작가가 인기 있다. 최근 임경선 작가가 추천사를 쓴 ‘사랑에 관한 모든 말들’(니들북)을 낸 한지은 편집자는 “연애 상담을 오래 하기도 한 임경선 작가와 책의 결이 맞는다고 생각해 부탁했다”고 했다. 외서의 경우 빌 게이츠, 미국 심리학자 애덤 그랜트, 스티븐 핑커 등이 책 뒤표지에 단골로 등장한다. 애덤 그랜트 추천사가 붙은 ‘피크 퍼포먼스’를 낸 여임동 부키 실장은 “외서의 추천사는 대부분 원서의 추천사를 번역해 쓴다”고 했다.
추천사가 판매에 끼치는 영향력은 얼마나 될까? 출판 관계자들은 “수치로 측정할 수는 없지만 책과 추천사의 합이 잘 맞으면 분명히 효과가 있다”고 말한다. 유명인이 쓴 추천사여야만 힘이 있는 건 아니다. 코미디언 유병재씨가 지난해 낸 삼행시집 ‘말장난’(아르테)에는 배우 유아인과 개그맨 조세호가 추천사를 썼다. 유명세도, 추천사 분량도 유아인이 월등했지만, 인구에 회자된 건 “병재야, 나는 왜 칸 이거밖에 안 남았냐. 책 너무 잘 읽었”이라고 말을 채 끝맺지 않으며 재치 있게 쓴 조세호의 추천사였다. 소셜미디어가 발달하면서 ‘인플루언서’들이 환대받는 것이 최근의 흐름이기도 하다. 추천사 쓴 책을 본인 계정에서 언급해주면 홍보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추천사 요청이 많은 일부 ‘셀럽’들은 겹치기 출연을 거듭한다. 출판사가 대필해주고 이름만 빌려주는 경우도 있다. 한 출판인은 “추천사를 남발하는 몇몇 유명인들에 대해 ‘추천사봇(추천사 쓰는 로봇)’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독자들이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다”고 했다. 반면 자신의 이름이 지나치게 소비되는 것이 조심스러워 추천사 쓰는 걸 꺼리는 이들도 있다. 소설가 황정은씨는 에세이집 ‘일기’에서 “표4는 가급적 쓰지 않는다”고 밝혔다. “내가 좋아하는 책의 저자와 나 사이에 다른 이름과 다른 얼굴이 있기를 바라지 않는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