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치동
조장훈 지음|사계절|416쪽|1만8000원
대치동 학원가에선 이 동네 주민들을 4개의 종족으로 나눈다. 먼저 ‘대원족’과 ‘연어족’. ‘대치동 원주민’의 줄인 말인 ‘대원족’은 1970년대부터 아파트를 분양받아 대치동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이른다. 고소득층이나 전문직 출신의 고령자로, 선경아파트는 고위직 공무원, 우성아파트는 고학력 대기업 출신이 많다고들 한다. ‘연어족’은 ‘대원족’의 자녀 세대로, 결혼 후 자신이 자란 동네로 재입성한 사례를 이른다. 타워팰리스, 도곡렉슬 등 도곡동과 한티역 일대의 자가(自家)에 거주한다. 연어족 엄마는 교수, 대기업 임원, 고위직 공무원의 배우자인 경우가 많다. 일부는 아이들 교육을 위해 일상생활에서 영어를 사용한다.
‘대전족’과 ‘원정족’이 남은 둘이다. ‘대전족’은 ‘대치동 전세족’의 줄인 말로 자녀 교육 때문에 전세를 얻어 대치동에 입성한 이들을 이른다. 이들은 ‘대전살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대치동으로 이사 오면서 삶이 혹독해졌다는 뜻이다. 이 밖에 서울의 비강남권이나 지방에서 자녀를 대치동 학원으로 보내는 사람들을 ‘원정족’이라 한다. “주말 저녁 9시 40분이 되면 이들 원정족 부모의 차량과 대치동 이외의 강남 거주 학부모의 차량으로 양방향 8차선의 도곡로가 빼곡하게 채워진다.”
저자는 1990년대 후반 논술강사로 사교육계에 발을 들였다. 대치동에서 학원장으로 근무하다 지난해 말 대치동과 학원 판을 떠났다. 그는 책에서 학벌에 대한 욕망으로 들끓는 ‘사교육 1번지’ 대치동의 욕망과 민낯을 그려낸다. 대학 시절 전공인 인류학이 저술의 방법론이 된다. 저자 역시 대치동이 지향하는 소위 ‘최고 명문대’ 출신이다.
대치동의 4개 종족은 학벌 사회의 은밀한 ‘카스트’다. 저자에 따르면 학원가의 상담실장이나 데스크 직원들은 대원족과 연어족을 선호한다. 이들은 학원비 밀리는 법이 없고, 예의 바르며,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교육관을 갖고 있다. 빠듯한 살림으로 자녀 교육에 절박하게 매달리는 대전족이나 원정족과는 사정이 다르다. 그러나 저자는 “소위 ‘금수저’인 대원족과 연어족이야말로 대학 입시에서 ‘아빠 찬스’ ‘엄마 찬스’를 가장 적극적으로 이용한 이들”이라 말한다. 2008학년도부터 도입된 입학사정관제, 2015학년도에 시작된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이 계기가 됐다. “이 전형에 기대를 걸고 자녀를 지원할 수 있는 학부모는 정해져 있었다. 지식인 엘리트 계층 또는 이들의 지원을 구매할 수 있는 경제적 상층 계급의 학부모들이다.”
저자는 입학사정관제 이후 학교는 학생들의 ‘스펙’을 만들어주기 위한 브로커로 전락했다고 주장한다. 교사들이 학부모회 등을 통해 공공연하게 부모의 직업을 조사하고, 대학교수나 전문직 학부모를 연결해 이들이 품앗이를 통해 자녀의 스펙 쌓는 일을 서로 돕도록 주선했다는 것이다. “더 적극적인 학부모들은 자녀의 이름을 학술 논문의 공저자로 올리기 위해 학생을 대학과 연구소로 보내 여러 실험과 연구 활동에 참여시켰다. 그 대가로 기본 시가 300만원을 전후한 돈이 오갔다. 실험실 사용료, 재료비, 활동 지도비 등 구체적 이름이 붙은 돈거래가 공식적, 비공식적으로 이루어졌다. (…) 그렇게 일부 학부모는 자식을 품앗이하며 수입도 얻었다.”
그렇다고 해서 저자가 자식의 학업 성취를 위해 올인하는 학부모들에 대해 무조건 비판적인 것은 아니다. “나는 대치동에서 목격한 한국 사회의 세속적인 욕망이 전부 잘못되었다거나 부당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현재의 상태를 개선하고, 더 나은 사회적 지위를 얻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보편적인 욕망이며, 자신의 발전과 진보를 향한 개인의 의지는 존중되어야 한다.“ 사교육을 무조건 때려잡을 것이 아니라, 인력과 체계적인 시스템을 ‘학교’가 흡수해 공교육이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고도 말한다.
저자의 이러한 시선은 자녀 등교 후 동네 카페에서 다른 엄마들과 입시 정보를 공유한다 하여 ‘카페맘’으로 불리는 대치동 엄마들에 대한 안쓰러움으로 이어진다. “자녀의 대학 입시에 지나치게 몰두하는 엄마들은 대개 아이가 좋은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면 그것이 자기 탓으로 돌아오리라는 불안감을 마음속 깊이 지니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원서 쓰기 직전의 마지막 상담에 아빠들이 ‘최종 점검’이라도 하듯 등장하면) 명문 대학을 나와 전문직에 종사하는 권위적인 남편은 아내에게 맡겨놓은 자녀 교육을 시찰하러 나온 사단장처럼 굴었고, 그 당당하고 말 많던 엄마들은 잘못한 것도 없는데 주인 눈치를 보는 하인처럼 행동했다.”
일부 고위층 인사 자녀들의 입시 비리 의혹으로 멍든 대한민국 사회의 ‘아픈 곳’을 풍부한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예민하게 건드리는 책이다. 다만 학벌 사회의 책임을 학부모의 욕망과 일부 교사들의 일탈에 떠넘기며, 사교육계 종사자의 책임에 대해서는 가볍게 언급하는 정도로만 넘어간 점은 아쉽다. 30년 된 수능의 노후화가 사교육 양산의 주범이며, MB 정부가 지지층인 유산계급에게 유리하도록 입학사정관제를 도입했다는 주장에도 갸우뚱할 이들이 있을 것이다. 몇몇 대목이 성글게 느껴지지만, 책장을 덮을 때쯤 궁금해진다. 수능 이후 1주일, 지금 대치동은 어떤 욕망과 열기로 들끓고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