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김신회, 의사 남궁인, 삽화가 임진아, 출판 편집자 이두루, 전직 기자 최지은, 작가 서한나, 식물세밀화가 이소영, 싱어송라이터 김사월, 서평가 금정연…. 지난여름 출간된 에세이집 ‘나의 복숭아’(글항아리)의 저자들이다. 총 아홉 명. ‘나’의 본질이자 취약점을 탐스럽지만 쉽게 무르는 ‘복숭아’에 빗대 9인 9색으로 털어놨다.
5월 나온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세미콜론)의 저자도 한 사람이 아니다. 문구덕후 김규림, 번역가 이지수 등 열 명이 코로나 시국, 집에 머물며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지를 들려준다. 지난해 말 나온 ‘마감일기’(놀)는 소설가 권여선 등 여덟 명이 썼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기 때문일까? 최근 에세이 분야에서 같은 주제에 대해 여러 명이 쓴 글을 책으로 엮어내는 ‘앤솔러지(anthology·선집)’ 바람이 불고 있다. 문학이나 학술서에서는 흔한 일이었지만 에세이 분야에서는 지난해 말부터 특히 도드라진다.
속도의 시대, 신간이 주목받고 잊히는 책의 생몰(生沒) 주기가 예전보다 짧아졌다는 것이 큰 이유 중 하나. 단독 저서는 기획부터 집필까지 1~2년 이상 걸리지만 앤솔러지는 보통 두 달 안에 펴낼 수 있다. 뚝딱 만들어 후다닥 시장에 내놓는 ‘치고 빠지기’ 전략이 가능하다. ‘나의 복숭아’ ‘매우 혼자인 사람들의 일하기’ 등을 펴낸 이은혜 글항아리 편집장은 “에세이 시장이 성장세를 보이다 보니 다양한 시도가 나오는데, 앤솔러지의 가장 큰 장점은 빨리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보통 한 저자에게 원고지 50장 내외 글을 한 달 안에 받는다”고 했다.
특정 이슈가 있을 때 시기를 놓치지 않고 재빨리 선점하는 데도 유리하다. 최근의 앤솔러지 붐을 이끈 한 축은 코로나 사태.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매우 혼자인 사람들의 이야기’ 모두 비대면 시대 단절 속 연대를 주제로 한다. 9명이 함께 쓴 ‘지금은 살림력을 키울 시간입니다’(휴머니스트)도 ‘코로나 시대 스스로를 돌보는 힘’이 주제. 황서현 휴머니스트 주간은 “트렌드를 빨리 읽어 다양한 목소리로 들려주기엔 앤솔러지가 용이하다”고 했다.
여러 명이 참여하다 보니 자칫 산만해질 수 있다는 것이 단점. 한 편집자는 “저자들이 자신이 어떤 사람들과 함께 묶이느냐에 민감하기 때문에 섭외를 수락했다가도 최종 명단을 보고 고사(固辭)하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공저(共著)는 단독 저서에 비해 판매량이 떨어진다는 것도 약점으로 여겨졌지만 소셜미디어 시대가 도래하며 상황도 조금씩 바뀌고 있다. 저자들은 각자의 소셜미디어에 책을 소개해 노출 빈도를 높이고, 서로 팬덤을 공유한다. ‘마감일기’를 낸 놀 출판사 이상화 편집자는 “소셜미디어에서 저자들이 교류하는 모습을 본 독자들이 팔로하지 않던 다른 저자의 팬이 되기도 하고, 인스타 라이브 등을 통해 함께 북토크를 하면 여러 저자의 팔로어가 모두 참석해 판매 시너지가 나기도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