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평범 지음|길벗

어쩔 수 없이 허락했는데, 어느새 게임 중독!

김평범 지음|길벗|264쪽|1만4500원

올 초 한국콘텐츠진흥원 조사에 따르면 초등학생 100명 중 2.5명이 ‘게임 중독’ 상태였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내년부터 ‘게임 중독’을 공식 질병으로 분류하기로 했다. 굳이 통계를 들고 오지 않아도 아이에게 언제부터, 얼마나, 어떻게 게임을 시킬지는 요즘 부모가 피할 수 없는 질문이다.

초등학교 5학년에 올라간 큰아들이 게임에 빠져 고생했던 ‘평범한’ 아빠가 아이를 게임 중독에서 탈출시킨 사연을 책으로 냈다. 실전에 써먹을 방법이 빼곡한 책에서 ‘문제는 부모’라는 지적에 유독 눈길이 간다. 그는 썼다. “게임 중독은 아이와 부모의 공동 책임이 아니다. 아들의 손에 모바일 게임이 핑핑 돌아가는 스마트폰을 준 부모의 무지함. 즉, 부모의 단독 책임이다.”

IT 기업에 다니며 강남 8학군에서 두 아들과 딸 하나를 키우는 김평범(필명)씨는 큰아들이 초등학교 5학년이 되면서 게임과의 전쟁을 선포한다. 스마트폰을 쟁취한 큰아들이 시도 때도 없이 게임을 하면서였다. 새벽 5시에 화장실에 숨어서 게임을 하기에 스마트폰을 압수했더니, 10만원짜리 스마트폰 공기계를 자기가 알아서 구해 게임을 하더란다. 침대 매트리스에 숨겨둔 공기계를 찾아 빼앗았지만 비슷한 일이 반복된다. 스마트폰은 책장 뒤에서, 옷장 서랍에서, 화장실 환풍구 근처에서 계속 발견됐다. 아이는 가족 외식 때 먹는 소고기보다 엄마 아빠가 집을 비웠을 때 먹는 컵라면 한 그릇을 백 배 이상 맛있다고 느꼈다.

게임 회사는 보다 많은 사람이 보다 오래 게임을 하도록 꾀를 쓴다. 저자는 자기 자식은 부모가 지켜야한다고 강조한다. /게티이미지뱅크

그는 아들의 게임 중독을 해결하려 평생 읽지 않았던 사회과학 논문들을 찾아본다. 그리고 게임 중독과 가족의 영향력에 대한 내용을 읽는다. “가정이 단단하고 변화에 유연하면, 가족 구성원이 게임 중독에 빠질 확률이 낮다. 자식이 게임 중독에 빠져 있다면 가정을 점검하는 것이 먼저 할 일이다.”

그는 ‘스마트폰을 손에서 못 놓는 부모가 문제’라고 지적한다. “휴대폰은 어른용 쪽쪽이(공갈 젖꼭지)다. 사랑하는 아이를 눈앞에 두고 ‘어른용 쪽쪽이’에 심취했던 사람은 다름 아닌 나와 아내였다. 부끄럽다.” 요즘 젊은 부부들은 아이에게 분유를 먹일 때도 손에서 스마트폰을 놓지 않는다. 아이는 게임 중독, 부모는 스마트폰 중독이다.

물론 게임이 꼭 나쁘지만은 않을 수 있다. 이런 주장도 있다. “게임에 몰입하는 집중력이 일상의 주의력을 높인다. 게임은 뇌의 원활한 사고의 감각 작용을 도와주는 훌륭한 매체다.” 저자는 이런 시각을 극도로 경계한다. 일종의 ‘확증편향’이라는 것이다. 아이와 게임을 두고 싸우기 귀찮은 부모는 ‘게임은 좋은 것’이라고 믿고 싶어지고, 그래서 게임을 시키고, 결국 후회한다는 주장이다.

그는 ‘게임을 증오하는 것은 선(善)’이라는 원리주의자적 입장으로 게임과의 전쟁을 수행했다. 게임을 아예 못 하게 하는 게 최선이다. 그러나 아이가 무조건 해야 한다고 하면 평일 매일 저녁 1시간이 아니라 토·일요일 중 하루에 다섯 시간을 몰아서 해 지루함이 느껴지게 하라고 한다. “규칙적으로 게임하도록 두는 건 아이를 게임 중독으로 이끄는 (부모의) 적극적인 태도다. 나는 그걸 몰라서 아들이 게임을 할 수 있는 시간까지 정해 평일에 게임을 하도록 했다.” 스마트폰을 허용하는 건 부모의 자유지만, 스마트폰을 아이가 어떻게 사용하는지는 부모용 앱을 깔아서 추적하라고 권한다. 각고의 노력 끝에 그의 큰아들은 3년 만에 게임을 아예 끊었다고 한다.

저자가 게임을 바라보는 시각은 극단적으로 부정적이다. 게임 중독에 대한 명확한 정의는 없다. 하루 몇 시간 게임을 하는 게 ‘중독’인지, 게임이 정말 저자가 우려하는 대로 아이를 ‘하류 인생’으로 내몰지 근거는 없다. 당장 백종원씨만 해도 게임을 상당히 하고도 성공한 사례다. 그렇지만 게임을 마침내 접은 저자의 큰아들이 남긴 말은 부모라면 생각해볼 거리를 던진다. “마약은 그걸 끊을 수 있는 시스템이 어느 정도 마련되어 있지요? 하지만 게임은 그런 게 없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