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양형 이유’에 이어 최근 에세이 ‘법정의 얼굴들’(모로)을 낸 박주영(53) 판사의 책을 읽으면 사법제도를 신뢰하게 된다. ‘몇 년형’이라는 기사로 소비되는 사건 너머에는 뭉개지고 흐려진 얼굴들이 존재한다. 박 판사는 형사 법정에서 마주한 이의 삶의 서사를 책에 꼼꼼히 기록하며 함께 아파한다. “내가 기록하지 않으면 내가 본 세상의 일부가 사라진다. 고통과 슬픔을 넘을 수 있는 수단은 기억뿐이다.”(법정의 얼굴들 8쪽)
그는 다른 직역 저자들이 쓴 ‘기억’들을 추천했다. 늦가을에 읽으면 좋을 ‘문장이 아름다운 직업 에세이’ 5권이다.
| 제목 | 저자 | 에세이 분야 |
| 친애하는 나의 민원인 | 정명원 | 법 |
| 온 더 무브 | 올리버 색스 | 의학 |
| 소년을 읽다 | 서현숙 | 교육/청소년 |
| 피아노 이야기 | 러셀 셔먼 | 음악 |
| 늑대가 온다 | 최현명 | 과학 |
옆집 소식을 엿듣고 싶은 건 인간의 본성인가 보다. 일에 대한 열정과 주체 못 하는 호기심으로 무언가를 열심히 기록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단 하나도 그냥 흘려보내는 법이 없다. 사람도, 동물도, 심지어 바람조차 그들을 무사통과하지 못한다. 그들에게 포착되고 채집된 이야기는 글을 통해 다시 많은 이의 가슴에 무수한 생각을 탁란한다.
‘친애하는 나의 민원인’은 스스로 중심에서 벗어나 있다고 말하는 검사가 쓴 책이다. 그러나 그가 쓴 문장의 중심은 강력하고 아름답다.
책 다섯 권은 필자만이 상대하고 알 수 있는 대상에 대한 이야기다. 가을이면 인적 없는 길모퉁이에서 풍경의 일부로 눌어붙은 사람들과, 그들만 아는 그 골목의 세밀한 정경과, 친애하는 민원인과 환자와, 소년과 청중, 그리고 늑대의 소식이 몹시 궁금해진다.
박주영 부산지법 동부지원 부장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