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 수집가
크빈트 부흐홀츠 지음|이옥용 옮김|보물창고|48쪽|1만6000원
화가인 막스 아저씨가 섬마을 철물점 5층 방에 이사를 온다. 아랫집 소년이 호기심 어린 얼굴로 아저씨 방에 드나들기 시작한다. 아저씨가 그림 그리는 동안 소년은 바이올린을 켠다. 연주를 마칠 때마다 아저씨는 말한다. “예술가 선생님, 정말 멋진 연주였어요!”
아저씨는 훌쩍 여행을 떠났다 돌아오기도 한다. 긴 여행에 나서던 날 그는 소년에게 열쇠를 맡기며 방을 돌봐 달라고 부탁한다. 빈 방에 들어선 소년은 평소 벽 쪽으로 돌려 세워놓았던 그림들이 자신을 향하고 있는 걸 발견한다. 언젠가 들었던 아저씨의 여행 이야기 속 장면들이다. 그림마다 쪽지가 놓여 있다. “캐나다에서 본 눈코끼리들. 눈 깜짝할 동안만 보였지.” “아침 여섯 시 반. 집 안에서 개가 짖었어. 그리고 누군가 불을 켰지.”
그림엔 비밀이 있어야 한다던 아저씨 말처럼 그림들은 사실적이면서도 자세히 보면 초현실적이다. 코끼리들이 눈보라 속을 걸어가고, 집 앞에는 집보다 큰 선물 꾸러미가 놓여 있다. 아저씨가 수집한 그 순간들이 소년의 마음에 닿아 새로운 심상을 만들어낸다. “나는 그런 순간이 있기 전에 어떤 일이 시작되고 있었다는 걸 분명히 느꼈습니다. 그 순간이 생기기 훨씬 이전에 시작되었지만 그 뒤로도 오랫동안 계속될 이야기가 그림 속에서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독일 화가인 저자는 이 작품으로 1998년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 라가치상을 받았다. 노이즈(잡티) 낀 사진처럼 그림의 질감이 가칠하다. 노이즈는 보통 제거의 대상이지만, 때로는 특유의 아련한 분위기를 사진에 불어넣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어딘가 꿈결 같은 그림들이 마음속 깊이 간직한 아름다운 순간의 기억들을 건드린다. 바이올린을 켜던 소년, 그리고 독자들을 위한 여행 그림 전시회가 펼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