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가을의 ‘언어 축제’라니, 얼마나 멋진가. 이 지구 어딘가에 ‘모국어의 날’을 만들어 기념하는 나라가 또 있을까.”
일본 시인 이바라기 노리코(1926~2006)가 어느 한글날 서울에서 세종대왕 동상을 참배하고 적은 문장입니다. “한국인들을 볼 때마다 더 이상 용해될 수 없는 굳고 맑은 결정처럼 단단하고 굳센 사람들이라고 느끼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모국어를 향한 마음은 그 중심적인 핵을 이루고 있는 듯하다.”
전후(戰後) 세대의 무력감과 상실감을 노래한 시 ‘내가 가장 예뻤을 때’로 잘 알려진 이바라기는 50세가 되던 1976년부터 10년간 한국어와 한글을 배웠다고 합니다. 그가 한국어를 배운 경험을 아사히신문에 연재한 칼럼을 묶은 책 ‘이바라기 노리코의 한글로의 여행’(뜨인돌)을 오랜만에 다시 읽었습니다. 정작 우리는 놓치기 쉬운 우리말과 글의 아름다움이 섬세하게 펼쳐집니다. 이바라기는 한국 명시를 번역한 ‘한국현대시선’으로 1991년 요미우리문학상을 받기도 했죠.
우리말의 종결어미 ‘~라’가 이바라기의 귀에는 노래처럼 낭랑하게 들립니다. 그는 ‘살아라’ ‘자라라’ ‘자라’가 반복되는 재일(在日)한국인 최화국의 시 ‘황천(荒川)’을 인용하면서 “‘라’ 음을 기조로 한 아름다운 울림은 마치 강이 흐르는 소리 같다”고 썼습니다. “실제로 ‘잘 자라’ 하고 노래하듯 억양을 붙여 손자에게 들려주는 할머니의 부드러운 목소리를 들은 적이 있는데, 아이가 아니라도 ‘자, 느긋하게 자볼까’ 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듯한 자애와 안심감을 주는 소리였다.”
‘~라’를 아름답다 느껴본 적이 있던가요? 일본인에겐 부드러운 물결 같다는 ‘~라’를 ‘~해라’ ‘~하지 마라’ 같은 삭막한 명령어로만 쓰곤 했던 언어 습관을 반성하는, 한글날 아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