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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는 계속되지 않는다

케이티 맥 지음|하인해 옮김|까치|264쪽|1만6000원

‘이런 세상. 당장 망해버리라지.’

부동산 폭등, 화천대유, 정치판 이전투구…. 욕지기가 치미는 일들이 쏟아지지만 이 책을 읽고 나면 화를 내기 전에 잠시 고민하게 될 것이다. 종말은 뜻밖에 빨리 찾아올 가능성이 있다. 50억년 뒤 태양이 다 타버리면 찾아올 지구의 종말이 아니라, 우주 그 자체의 끝이. 영화 ‘인터스텔라’ 속 기술이 모두 실현돼도 인류가 도망칠 곳이 없어지는 때가. 그 종말은 지금 이 순간에도 우주 어딘가에서 시작돼 빛의 속도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을지도 모른다.

천체물리학자 케이티 맥(40)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 교수가 쓴 ‘우주는 계속되지 않는다’(까치)는 평소 생각이 가닿지 않는 불편한 미래를 눈앞에 펼쳐낸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고, 삼라만상도 예외가 아니다.

저자는 천체물리학계에서 내놓은 최신 가설 다섯 가지를 차례로 설명한다. 참고로 인류가 살아남는 시나리오는 없다. 먼저 ‘진공 붕괴’. 태양이 다 불타버리기 전, 인류가 지구에서 생존하고 있을 때 벌어질 수 있는 예외적인 종말 시나리오다. 흔히 ‘진공’이라고 알고 있는 우주의 상태가 미묘하게 흔들리면 강력한 에너지 거품이 발생하며 모든 것을 집어삼킬 수 있다. 저자는 이렇게 위로한다.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진공 붕괴는 (걱정한들) 막을 방법이 없다. 에너지 거품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 길도 없다. 거품과 충돌하더라도 고통은 없다.” 에너지 거품에 휩쓸리면 몇 마이크로초(100만분의 1초) 안에 중력에 의해 모든 것이 붕괴한다고 한다. 인체가 사라지는 속도가 신경이 고통을 두뇌에 전달하는 속도보다 빠르다는 뜻이다. 이런 붕괴가 일어날 확률은 천문학적으로 낮지만, 우주의 변덕에 따라 당장 내일도 벌어질 수 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17세기 스페인 화가 안토니오 데 페레다가 그린 ‘덧없음의 알레고리’. 당대 유럽인들은 죽음을 상징하는 해골이 화폭에 담긴 바니타스 그림을 집에 걸어뒀다. 우주가 계속되지 않는다는 책의 설명은 바니타스 그림과 유사한 역할을 한다. “죽음을 기억하라.” /게티이미지코리아

다음은 불지옥. 빅뱅으로 팽창을 시작한 우주가 어느 순간 수축을 시작하면 어떻게 될까. 하늘로 던져올린 공이 다시 내게 떨어지듯, 사방으로 뻗어나가던 은하와 은하가 한 점으로 모여들며 우지끈 하고 부딪친다. 태양은 폭발하고 지구는 통째로 불타오를 것이다. 이것이 ‘빅 크런치’. 가설이 들어맞는다면 수백억 년 뒤에 일어날 수 있다.

얼음지옥도 있다. 우주가 팽창을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확대되면 에너지(열) 밀도는 점차 낮아진다. 우주에서 온기가 사라지고 절대영도(영하 273.15도) 수준에서 평형을 이루게 된다. 열이 없어지기 때문에 ‘열 죽음’이라고도 부른다. 헤아리기도 어려운 먼 미래에 벌어질 전망이다.

바운스 이론은 불지옥과 얼음지옥이 반복된다는 주장이다. 빅뱅으로 팽창한 우주가 빅 크런치로 합쳐지고, 다시 빅뱅을 일으켜 팽창한다. 하늘로 던진 고무공이 땅에 떨어졌다가 다시 튀어오르기(바운스)를 반복한다.

‘빅 립’ 이론은 우주가 가속 팽창을 거듭하면서 은하도, 물질마저도 그 힘으로 산산이 부서지게 될 것이라 전망한다. 가설이 들어맞는다면 1000억년 뒤쯤 현실이 될 수 있다.

인간이 우주의 종말을 목격할 일은 아마 없을 것이다. 왜 그럼 우주의 끝을 알아야 하는가. 그러나 이 책은 우리에게 16세기 바니타스(Vanitas, 라틴어로 덧없음) 그림이 했던 역할을 해준다. 바로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죽음을 기억하라)’. 네덜란드를 중심으로 유행한 바니타스화에는 돈, 귀금속, 술병 같은 세속적인 물건과 함께 해골이 등장한다. 유럽인들은 이 그림을 집에 걸어두고 감상했다. 해골이라니 악취미 같지만, 죽음을 생각하게 함으로써 삶의 덧없음과 순간의 중요성을 환기했다.

저자가 대화를 나눈 한 천체물리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난 우리가 찰나의 존재라는 사실이 무척 좋아요. 언제나 과정이죠. 여행이고요. 우리가 어디에 이르든 누가 신경 쓰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