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절친
수지 그린 지음|박찬원 옮김|아트북스|320쪽|2만2000원
반려동물 인구 1000만 시대.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서 선물받은 풍산개가 낳은 새끼에게 친히 우유를 먹이는 사진을 소셜미디어에 올렸고,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반려견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지속적으로 인스타그램에 게시하고 있다. 자신의 반려견과 함께 이미지로 기록되고자 하는 욕망은 꽤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6세기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 5세는 울프하운드종(種) 사냥개 샴페레와 함께 초상화에 남기를 원했다. 이탈리아 화가 티치아노는 다른 화가가 그린 황제와 개의 초상화를 훌륭하게 재해석한 새 그림으로 황제를 만족시켰다. 그는 귀족 작위를 받았고, 왕실의 공식 화가가 되었으며, 르네상스 시대의 수퍼스타가 되었다. 이후 개와 함께 한 초상화가 하나의 장르가 되면서 르네상스 화가들은 개가 없는 고객을 위해 모델로 쓸 개를 데리고 있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예술에 등장하는 동물을 오랫동안 연구해 온 영국 작가 수지 그린은 말한다. “인간은 늘 개와 함께 불멸로 남기를 선택했다. 삶의 우여곡절을 같이 겪고 자신감을 불어넣어주고 기쁨과 신뢰를 안겨준 친구, 그림으로 함께 남기에 이보다 더 나은 벗이 있을까?”
수지 그린의 책 ‘나의 절친’은 미술 작품 속 개를 통해 개와 인간 사이 오랜 우정의 역사를 짚는다. 인간은 선사시대부터 개 이빨로 목걸이를 만들어 예술품으로 남기는 등 이 ‘네 발 달린 친구’에게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동물 초상화는 정통 화가에게 적절하지 않은 주제로 간주됐지만 화가들은 꾸준히 개를 그렸다. 개는 권력자들의 벗이자, 예술가의 뮤즈이기도 했다.
개는 프랑스 궁정에서 사냥견으로 사랑받다가 이내 그림 속으로 들어왔다. 태양왕과 루이 15세의 화려한 궁전에서는 개의 초상화가 다량 그려졌다. 이들 군주가 사격과 수렵뿐 아니라 반려견에도 집착했기 때문이다. 루이 14세는 1702년 화가 데스포르트에게 자신이 특별히 아끼는 포인터 두 마리 디안과 블롱드가 사냥감을 노리고 있는 모습을 초상화로 그리게 했는데, 이는 개 초상화의 폭발적인 유행을 낳았다. 영국에서 개의 초상화는 19세기에 이르러 절정에 달하는데, 이는 빅토리아 여왕과 남편 앨버트공의 후원 때문이다. 개를 사랑한 이 부부는 수십 마리나 되는 개를 전부 초상화로 남겼는데, 그중 상당수는 개 그림으로 이름난 화가 에드윈 랜드시어가 그렸다. 빅토리아 여왕은 감사의 선물로 1850년 랜드시어에게 기사 작위를 내렸고,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땐 국장(國葬)으로 애도했다.
외로운 예술가들도 개를 아꼈다. “삶의 지독한 침묵을 견디기보다는 차라리 라디오의 지직거리는 소음을 듣는 편이 좋다”고 했던 에드바르 뭉크가 고독을 이기는 또 다른 방법은 개들과 지내는 것이었다. 그가 60대 초반 그린 ‘개와 함께 있는 자화상’엔 테리어 트룰스와 핍스가 등장한다. 뭉크는 개들이 인간의 손길을 갈구하며 앞으로 다가오고, 그림 속 자신은 손을 내밀어 따스하고 부드러운 털뭉치와 만나기 직전의 순간을 화폭에 그려넣었다. ‘팝아트의 왕’ 앤디 워홀은 닥스훈트 아모스와 아치를 끔찍하게 여겼다. 아모스가 등뼈 골절로 고통스러워할 때 그는 밤새 개 옆에 누워 마룻바닥에서 잤다. 아모스와 아치가 아파 수의사에게 다녀온 우울한 날 워홀은 일기에 썼다. “인생은 너무나 짧고 개의 삶은 더더욱 짧다. 그들은 둘 다 곧 하늘로 갈 것이다.” 그런데 하늘로 먼저 간 것은 앤디 워홀이었다. 그는 이 일기를 남긴 두 달 후인 1987년 2월 22일 담낭 수술 합병증으로 세상을 떴다. 개, 인간, 예술이라는 세 존재를 빼어난 글솜씨와 치밀한 자료 조사를 바탕으로 탄탄하게 엮어낸 책. 풍성한 도판이 눈을 즐겁게 한다. 원제 Dogs in 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