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계 미국인 시인 캐시 박 홍. '마이너 필링스'에서 미국 사회의 아시아인이 '모범 소수자'라는 믿음의 허구성을 파헤친다. 그는 "우리는 아시아인은 좋은 처지에 있다는 거짓말에 주눅이 들어 있다. 근면성을 발휘하면 존엄성으로 보상받으리라 믿고 묵묵하게 열심히 일하지만, 근면은 우리를 보이지 않는 존재로 만들 뿐"이라고 했다. /Beowulf Sheehan

잠시 시계를 지난 겨울로 돌려보자. ‘미나리’가 골든글로브에서 작품상 아닌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오르면서 논란이 일었다. 감독과 배우 다수가 미국인이지만 대사는 대부분 한국어라는 이유였다. 한국계 이민자 가정의 아메리칸 드림을 서정적으로 그려 아카데미상을 받은 이 작품조차도 스크린 밖에서는 ‘차별’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것이다. 한국계 미국인 배우 대니얼 대 킴은 트위터에서 이 소식을 전하며 이렇게 꼬집었다. “우리나라는 미국인데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는 말을 듣는 일과 똑같은 꼴이다.”

최근 한국어판이 나온 ‘마이너 필링스’(마티)는 아시아인에 대한 이런 차별이 얼마나 교묘하고 집요한지 파헤친다. 저자인 캐시 박 홍(45)은 이민 1세대 부모 밑에서 태어난 한국계 미국인 시인. 그는 본지 서면 인터뷰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 이후 백인 우월주의가 대두하면서 아시아계 미국인의 정체성에 대한 글쓰기가 절실해졌다”고 했다. 이 책은 미국에선 지난해 초 출간됐다. 코로나로 아시아계에 대한 증오 범죄가 급증한 올해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가 되고 퓰리처상 논픽션 부문 최종 후보에 올랐다.

같은 유색인종이어도 미국 사회에서 아시아인의 이미지는 흑인이나 히스패닉과 다르다. 종종 아시아인은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근면 성실한 ‘모범 소수자’로 간주된다. 아시아계에 대한 차별도 잘 드러나지 않는데, 이것은 차별이 없거나 심각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아시아인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인식되기 때문이다. “아시아인은 존재감이 별로 없다. 우리는 진정한 소수자로 간주될 만한 존재감조차 충분히 가지고 있지 않다.” 캐시는 “살아온 경험들이 온전하게 묵살당하고 인지되지 못하는 곳에서 소수자들이 느끼는 우울, 불안, 편집증 같은 감정을 ‘마이너 필링스’(소수적 감정)라는 제목에 담았다”고 했다. 소수자의 감정도 결코 사소하지 않다는 의미다.

그는 “(차별은) 살아오는 내내 그랬고 내가 태어나기 전에도 그랬다”면서 “미국은 매우 깊숙한 곳에서부터 분리된 나라”라고 했다. 이민자의 나라 미국의 역동성을 ‘멜팅 폿(용광로)’이나 ‘샐러드 볼’에 비유하기도 하지만 캐시는 “인종 문제는 너무나 복잡해서 단 하나의 은유도 들어맞지 않는다”며 “그것(비유)은 신화에 불과하다”고 했다.

책이 나온 뒤 주변의 이민 2세대들이 열광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캐시는 “나의 경험과 감정을 똑같이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하는 다른 인종들, 흑인·라틴계·이슬람계 독자들의 반응도 경이로웠다”고 했다. 여기서 ‘백인이 곧 보편’이라는 신화에 대항하는 비(非)백인 연대의 필요성과 가능성이 포착된다. 캐시는 한국어판 서문에 “평등을 위한 미국 흑인들의 투쟁이 없었다면 우리 부모님을 비롯한 수많은 가정이 미국에 이민 올 기회조차 누리지 못했을 것”이라고 썼다.

미국과 상황이 다른 한국 독자들은 약간의 온도 차를 느낄 수도 있다. 캐시는 “한국인들은 한국에 사는 백인들을 동남아시아인이나 흑인과는 정반대로 대한다”면서 “백인 우월주의가 얼마나 뿌리 깊은지, 세계적으로 인종주의가 얼마나 팽배한지 깨달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전 세계적 인종주의에서 한국만 예외일 수 없으며 평등을 향해 나아가는 연대에서 한국만 열외로 남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