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현지 시각) 카불 국제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탈출하기 위해 긴 줄을 늘어선 사람들.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은 미군이 철수하자 20년 만에 아프가니스탄을 다시 장악했다. /UPI 연합뉴스

아프간 사태 발발 이후 탈레반이 저지르는 끔찍한 일들을 바라보면서 아마도 많은 분들이 ‘저들은 대체 왜 저러는 걸까’ ‘저런 이들이 아프간 정권을 차지하게 된 배경은 뭘까’라고 궁금해 하셨을 것 같습니다. 지난주 Books는 이번 아프간 사태를 정치, 여성, 문화 등 다각도에서 이해할 수 있는 책들을 양지호 기자가 전문가들의 추천을 받아 소개했습니다. 부시의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비판하며 움베르코 에코가 언급해 유명해진 피터 홉커크의 책 ‘그레이트 게임’부터 아프간 여성들의 비참한 삶을 그린 할레드 호세이니 소설 ‘천 개의 찬란한 태양’, 간다라 미술 전문가 이주형 서울대 교수가 바미안 대불을 비롯한 아프간 문명에 대해 쓴 ‘아프가니스탄, 잃어버린 문명’까지 다양한 책들을 만나 보시죠.

[영국·러시아·소련·미국도 졌다… 이 땅은 ‘제국의 무덤’]

부르카를 입지 않아 살해당하고, 교육받은 사실을 감추려 대학 졸업장을 숨기는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에 대한 뉴스를 접하면서 최근 읽은 데버라 펠드먼(35)의 회고록 ‘언오소독스: 밖으로 나온 아이’(사계절)를 떠올렸습니다.

데버라 펠드먼의 회고록 '언오소독스'. /사계절

펠드먼은 뉴욕의 유대교 초정통파 공동체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율법이 최우선인 이 사회에서 여성에겐 ‘탈무드’를 읽는 것이 허락되지 않습니다. 결혼을 하면 머리를 박박 깎아야 합니다. 남편 외의 남자에게 머리카락을 보여 음심(淫心)을 자극하면 안 되기 때문이죠. 열일곱 살에 중매결혼을 해 열아홉에 아들을 낳은 펠드먼은 스물 셋이던 2009년 아이를 데리고 공동체에서 탈출합니다. ‘이런 세상에서 내 아이를 키우고 싶지 않다’고 생각해서요. 율법을 어기고 자위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아들을 죽인 아버지를 공동체가 감싸고 도는 걸 목격한 일이 큰 계기가 됩니다.

펠드먼 이전까지 공동체를 떠난 여성이 양육권 소송에서 이긴 사례는 없었습니다. 공동체는 몸값 비싼 유대인 변호사들을 고용해 공동체를 배신한 여성에게 벌을 주곤 했죠. 그렇지만 펠드먼은 달랐습니다. 회고록을 썼고, 그 회고록이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언론에서 화제가 되면서 소송에서 승리했죠. 그는 현재 아이와 함께 베를린에 살고 있습니다. 그의 회고록은 각색되어 ‘그리고 베를린에서(Unorthodox)’라는 넷플릭스 드라마로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베를린에서'의 한 장면. 주인공 에스티는 결혼식을 마치고 삭발 후 가발을 쓴다. 유부녀가 자신의 머리카락을 외간 남자에게 보여주는 것은 음모를 보여주는 것과 같다고 해석하는 유대 학자들이 있어서다. /넷플릭스

유대교든 이슬람이든, 종교 자체에 무슨 잘못이 있겠습니까? 극단으로 치달은 모든 종교는 광기를 띠게 되죠. 슬픈 것은 신(神)의 뜻으로 포장된 폭력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대개 희생양이 되는 건 신체적으로 약한 여성과 아이라는 사실입니다.

넷플릭스 리얼리티 프로그램 '벗어던지고 자유롭게' 포스터.

넷플릭스 리얼리티 프로그램 ‘벗어던지고 자유롭게’는 마흔 두 살에 초정통파 유대인 공동체를 탈출해 맨해튼의 성공한 사업가로 살고 있는 줄리아 하트(50)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초정통파 교리를 무비판적으로 따르려는 열네 살 막내아들에게 하트는 “근본주의가 네 인생을 망치게 두진 않을 거야”라고 합니다.

“난 그냥 평범한 유대인이에요”라고 하는 아들에게 하트는 울면서 말하죠.

“아니야, 얘야, 세상에는 현대의 정통 유대인이 수백만은 돼. 샤보스(안식일)와 코셔를 지키면서도 너처럼 생각하진 않지. 넌 지금 독실한 유대인이 아닌 근본주의자인 거야. 엄마도 그 세상에 살았어. 작고 슬픈 세상이지. 거기서 여자는 인생의 목적이 하나뿐이야. 결혼해서 애 낳는 거. 엄마가 정말 걱정하는 게 그거란다. 내 아들이 아는 유일한 세상이 그런 세상인 건 싫거든.”

우리는 대체 어떤 세상에서 살고 있으며, 우리 아이들에겐 어떤 세상을 가르쳐주고 있는 걸까요? 하트의 말을 곱씹으며 되물어 보았습니다. 곽아람 Books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