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통영에 있었습니다. 숙소로 가던 길, 통영 태생 소설가 박경리(1926~2008)를 기리는 박경리 기념관 이정표를 보았습니다. 다음날 서울로 돌아오기 전 박경리 기념관에 들렀습니다. 국내 기념관 사업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았기 때문에 큰 기대 없이 충동적으로 잡은 일정이었는데 의외로 이번 통영 방문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이 되었습니다.
기념관 뒷편에 박경리 선생의 묘소가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통영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곳. 푸른 산에 푸른 바다가 폭 둘러싸이고 올망졸망한 집들이 속닥하게 감싸여 있더군요.
묘소 바로 아래에 마련된 벤치에 앉아 바다와 하늘과 녹음과 마을을 내려다보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구름을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부산했던 마음 속 감정들이 가지런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선생은 참 좋은 곳에 묻히셨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죠. 미국 화가 에드워드 호퍼의 묘소를 방문했을 때, 드넓은 강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위치한 그 무덤을 보고 ‘예술가답게 죽어서도 절경을 내려다보는구나’ 생각하며 부러워했었는데 박경리 선생 묘소도 그에 못지 않더군요.
“작가에게 글을 쓴다는 것은 업입니다. 작은 기쁨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슬픔을 사랑하세요. 슬픔을 사랑해야 합니다. 있는 그대로 견디어야 합니다.”
기념관 벽에 ‘문학을 사랑하는 젊은이들에게’라는 코너가 마련되어 있고, 생전 선생이 남긴 이 말이 적혀 있었습니다. “슬픔을 사랑해야 한다”는 말을 곱씹으며 미국 시인 메리 올리버(1935~2019) 산문집 ‘긴 호흡’ 중 한 구절을 떠올렸습니다. “사람들에게 위로와 즐거움과 활력을 주는 시를 쓰고 싶다”던 올리버는 이렇게 말합니다.
“젊었을 때 나는 슬픔에 매료되었다. 슬픔이 흥미로워 보였다. 나를 어딘가로 데려가 줄 에너지 같았다. 늙지는 않았다고 해도 이제 나이가 든 나는 슬픔이 싫다. 나는 슬픔이 자체의 에너지가 없이 내 에너지를 은밀히 사용한다는 걸 안다.”
슬픔의 힘으로 응어리 토해내듯 쓰는 작가가 있고, 자기 연민을 아끼는 단단함으로 노래하는 작가도 있죠. 취향에 따른 선호는 있겠지만 우리가 두 부류의 글 모두에 감응할 수 있는 건 인간이란 양가적 존재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박경리 소설 ‘파시(波市)’에 “존엄성은 자기 자신의 가장 숭고한 것을 지키는 것”이라는 구절이 있다는 걸 기념관 설명문을 보고 알았습니다. 고등학생 때 읽은 책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해 기념관을 나와 서점에 들렀습니다. ‘파시’를 찾았지만 재고가 없어 대신 박경리 유고시집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를 샀습니다. 책장을 넘기다 이 구절에 눈이 멎었습니다. “잔잔해진 눈으로 뒤돌아보는/청춘은 너무나 짧고 아름다웠다/젊은 날에는 왜 그것이 보이지 않았을까”(산다는 것) 곽아람 Books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