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명소녀 투쟁기|현호정 지음|사계절|152쪽|1만2000원
19살 소녀 구수정은 대학에 합격할지 궁금해하며 찾아간 점집에서 무당에게 예언을 듣는다. “야, 넌 스무 살이 되기 전에 죽는다.” 소녀는 울며불며 매달리지 않는다. “싫다면요?” 비를 피하듯 죽음을 늦출 방법을 듣는다. 먹구름이 오는 속도보다 빨리 달리면 비를 맞지 않는 것처럼, 남동쪽으로 계속 간다면 시간을 벌 수 있다. 살고 싶어 도망가는 길에 죽으려고 길을 나선 소년 이안과 만난다. 소녀와 소년은 생사를 건 여정을 함께한다.
이들의 모험은 현실 세계를 벗어나 이(異)세계에서 벌어지는 환상소설이 된다. 도시 길거리에서 날개 달린 개를 타고 도달한 땅에서 저승의 신, 눈[目] 인간과 모기 인간, 허수아비 인간 등을 만난다. 작가는 주인공이 죽음의 위기를 넘기고 삶을 이어가는 고전 설화를 차용했다고 한다. 몽환적인 배경과 인물, 한 치 앞을 예측하기 어려운 서사는 독자에게 독특한 감각을 선사하지만, 부족한 개연성과 도덕적인 당위는 자꾸 고개를 젓게 한다. 수정이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선 검은 명부에 적힌 이들을 죽여야 하는 설정이 대표적이다. “나는 나의 죽음을 죽일 수 있다.” 생존을 위해 살인을 해야 하는 이유에 납득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작가는 우직하게 이야기를 밀어붙이고, 반전이 있는 영화처럼 마지막 장에 이르러 새로운 국면을 보여준다. 그제야 왜 이토록 소녀는 살고자 했고 소년은 죽고자 했는지, 산다는 게 얼마나 당연하면서 귀한 일인지를 새삼 알게 된다. 2016년 31세 나이로 세상을 떠난 고(故) 박지리 소설가를 기리며 출판사가 만든 ‘박지리문학상’의 1회 수상작. 장르와 문법을 넘나드는 이야기로 인간을 탐구했던 작가가 낸 길에서 새로운 색깔과 향기를 내는 작품이 독자와 만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