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이명애 지음|모래알|60쪽|1만6000원
“그림으로 옮긴다는 게 무모하게 느껴질 정도로 압도적인 풍경이었다.” 볼로냐 아동도서전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에 두 차례 선정됐던 저자가 휴가를 주제로 그림책을 만들면서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삼척 길남마을 바닷가에서 본 노을이었다고 한다. 그곳에서 휴가를 보냈던 저자는 그 장엄한 노을이 “나를 충족시키는 에너지로, 뭔가 채워지는 든든함으로 다가왔다”고 했다.
휴가는 재충전이라고 한다. 그러나 휴가는 급속 충전이라든가 100% 충전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것이다. 서서히 진행되는 채움은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95%쯤 충전됐을 때 돌아와 5%의 여백 때문에 다음 여행을 꿈꾸는” 과정이다.
휴가는 일상과의 결별이 아니다. 휴가지에는 완벽한 휴식이 보물처럼 숨겨져 있지 않다. 여전히 일상과 느슨한 연결을 유지한 채 삶에 대한 애착을 조금씩 되찾는 것. 글이 없는 이 그림책에서 그 느릿한 과정은 색채의 은유로 드러난다.
하루하루 달력의 날짜를 지우며 휴가를 기다리는 주인공은 심신이 지쳐 온 몸이 푸르게 식은 상태다. 그러다 기차를 타고 삼척에 도착해 백사장을 거닐고, 비 오는 밤 민박집 창밖을 하염없이 내다보다가, 고양이 한 마리와 함께 바위에 앉아 붉게 물드는 하늘을 바라본다. 그러는 사이 주인공을 감싸던 차고 푸른 빛은 조금씩 온기 어린 노랑으로 변해간다. 색의 변화는 1%씩 차오르는 충전 중의 배터리처럼 아주 조금씩 진행된다.
휴가철이면 더 멀리, 더 낯선 곳으로 쫓기듯 떠나던 때가 있었다. 하늘길이 막혀버린 지도 이태가 돼 가는 지금, 생각하면 아득하다. 꼭 그래야만 좋은 휴가는 아니다. 올여름엔 가까운 곳에서 여유롭게 휴가의 의미를 돌아봐도 좋을 것이다. 마침 곧 휴가 시즌이다.